항목 ID | GC40002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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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相勛 |
영어공식명칭 | Seo Sanghun |
이칭/별칭 | 군필(君弼),초원(初園),조카와 소쿤[徐川相勛]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권시용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서상훈(徐相勛)[1858~1943]은 1858년 3월 15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자는 군필(君弼), 호는 초원(初園)이며, 창씨명은 조카와 소쿤[徐川相勛]이다. 아버지는 서정순(徐正淳)이다. 서상훈은 대한제국 시기 고위 관료를 지냈다. 1910년 강제합병 때부터 1943년 7월 사망할 때까지 33년 동안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와 참의를 지내며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하였다.
[활동 사항]
서상훈은 1885년 진사시, 1889년 6월 2일 문과에 급제하였다. 1893년 대한제국 예문관검열·탁지부참서관, 1898년 비서원승·수학원차장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907년부터 친일 유림 단체인 대동학회(大東學會)와 공자교회(孔子敎會)에서 활동하였다.
서상훈은 1910년 10월 1일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된 후 조선총독의 자문 기구인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되었고, 1921년 중추원 관제가 개정된 뒤에도 3년 임기의 중추원 참의직을 계속 이어 갔다. 1943년 사망할 때까지 33년 동안이나 중추원 참의를 지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서상훈은 매년 열리는 중추원 회의에 참석하여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의견을 적극 제시하였다.
한편 1912년 이문회(以文會) 회원, 1920년 1월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 이사, 1929년 조선박람회 평의원, 1931년 단군신전봉찬회 고문, 1932년 조선유교회 명리원 법정, 1939년 조선유도연합회 회원,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공을 인정받은 서상훈은 1912년 8월 1일 한국병합기념장, 1922년 6월 27일 훈4등 서보장(瑞寳章), 1928년 8월 28일 훈3등 서보장, 1935년 10월 1일 시정25주년기념표창을 차례로 받았다. 서상훈은 1943년 7월 31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