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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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丙哲 |
영어공식명칭 | Seo Byeong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8월 4일 - 서병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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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서병철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5월 - 서병철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70년 2월 5일 - 서병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서병철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남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경상북도 - 경상북도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서병철(徐丙哲)[1892~1970]은 1892년 8월 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서병철은 1920년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허영원(許永元) 등과 함께 경상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4회에 걸쳐 모금하였다. 특히 영남 지방의 부호인 박소용(朴韶鏞)에게 군자금 6,000원 헌납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서병철 등은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한 후 중국 상하이로 탈출하려 하였으나 활동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서병철은 1921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및 공갈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서병철은 1970년 2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서병철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