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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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天澤 |
영어공식명칭 | Bae Cheontaek |
이칭/별칭 | 배병현(裵炳鉉),배달무(裵達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 배천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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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배천택 대동청년당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대 초반 - 배천택 중국 망명 |
수학 시기/일시 | 1916년 7월 - 배천택 베이징공업대학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배천택 서로군정서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배천택 국민대표회의 참석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3월 - 배천택 국민당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4월 - 배천택 다물단 확대·개편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10월 - 배천택 대독립당조직 북경촉성회 참석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배천택 한국혁명당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배천택 신한독립당 창립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배천택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배천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인교동 -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
거주|이주지 | 중국 - 중국 |
학교|수학지 | 사립수창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
활동지 | 중국 - 중국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조선민족혁명당 간부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배천택(裵天澤)[1892~?]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태어났다.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결성하고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부민단(扶民團)·다물단(多勿團)·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등 여러 단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배병현(裵炳鉉)·배달무(裵達武)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배천택은 대구 사립 수창학교와 경성공업전습소를 졸업하였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이원식(李元植)·남형우(南亨祐)·이학수(李學洙) 등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 회복을 위한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10년 8월 국권을 피탈당한 뒤 중국 봉천성[奉天省] 류허현[柳河縣]으로 망명하여 부민단에서 활동하였다. 1916년 7월에는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베이징공업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얼마 후 중퇴하였다.
배천택은 1919년 남만주 서간도에서 조직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하였다. 1923년 1월부터 5월까지 상하이[上海]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자, 김동삼(金東三)·이진산(李震山) 등과 함께 남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인 통의부(統義府) 대표로 참석하여 국민대표회의 의장 김동삼의 비서장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3월 하순에는 베이징에서 김창숙(金昌淑)·남형우(南亨祐) 등 경상도 출신 인사들이 주도하여 결성한 국민당(國民黨)에 참여하여 서무 겸 외교부장을 맡았다. 1925년 4월 김창숙 등과 함께 베이징 마쓰먀오[麻四廟]에서 기존의 다물단을 확대·개편하였다. 다물단은 친일파 처단과 국내외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전개하였던 항일 비밀결사로서 의열단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1924년 말 남만주 지역 통합 독립운동 단체이자 교민 자치단체인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되자, 배천택은 정의부에 참가하여 외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11월 상하이에서 각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을 위한 한국유일독립당촉성회 각지대표연합회가 개최되자 정의부 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운동 단체들의 대동단결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26년 10월 베이징에서 통일적 독립운동 정당 결성을 위한 ‘대독립당조직 북경촉성회’가 조직되었을 때 국민위원회 위원으로 참가하여 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29년 배천택은 윤기섭(尹琦燮) 등과 함께 난징[南京]에서 한국혁명당(韓國革命黨)을 조직하였다. 한국혁명당은 중국 관내에서 활동 중인 독립운동 단체의 대동단결 및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연합전선 등을 도모하는 정당이었다.
1934년 난징에서 한국혁명당이 중국 동북지방의 한국독립당과 통합하여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을 창립하였는데, 배천택은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어 1935년 7월 난징에서 의열단·한국독립당·신한독립당·조선혁명당·대한독립당 등이 통합하여 조선민족혁명당이 창건될 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1937년 7월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방송국을 통하여 매일 「일본 민족에게 고함」과 「조선 민중에게 고함」이라는 일본어·한국어 방송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하여 일제 강점 후 한국인의 비참한 생활상을 폭로하고 해외 독립운동 단체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한편, 국내 독립운동을 고취하고 일제에 대한 비협력과 독립운동 참여를 호소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배천택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