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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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相濂 |
영어공식명칭 | Bae Sangryeo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 배상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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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3년 - 배상렴 재건 달성친목회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배상렴 독립운동 자금 모집 논의 |
출생지 | 경산리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거주|이주지 | 왜관 - 경상북도 왜관읍 |
학교|수학지 | 성주보통학교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
학교|수학지 | 청년학원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경상북도 - 경상북도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재건 달성친목회 회원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배상렴(裵相濂)[1892~?]은 1892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건 달성친목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배상렴의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형은 배상연(裵相淵)이다.
[활동 사항]
배상렴은 성주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서울 남대문 안에 있는 청년학원에 입학하여 3년 후 졸업하였다. 1912년경 칠곡군 왜관에서 정미업을 했는데, 이때 청년학원 재학 중에 만난 함경북도 출신 김승한에게 안창호 연설집의 출판 비용을 제공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출판법 위반 혐의로 벌금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1913년 토지 매입을 위하여 서상일(徐相日)과 함께 중국 장백부(長白府)를 방문하였다. 1917년에는 성주군 청파면[현 수륜면] 신정리에서 금광업에 종사하였다.
1913년 재건 달성친목회가 결성되자 배상렴도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이를 계기로 서상일·홍주일·서병룡·서창규·박영모 등의 인사들과 교유하였다. 1919년 5월 말 대구에서 서상일·서창규·편동현 등과 함께 경상남도 통영 출신의 유진한(兪鎭翰)을 만나 독립운동 자금 마련 방안을 논의하였다. 6월에는 형 배상연이 왜관에서 체포되어 대구로 이송되자 배상렴도 대구로 돌아왔는데, 이때 재건 달성친목회를 밀고한 정진영이 같은 기차에 타고 있었다. 배상렴은 재건 달성친목회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구류 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