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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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甫款 |
영어공식명칭 | Lee Bogwan |
이칭/별칭 | 이세보(李世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본욱 |
활동 시기/일시 | 1434년 - 이보관 진사시 합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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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40년 - 이보관 문과 급제 |
출생지 | 대전리 -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
묘소|단소 | 이보관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사당|배향지 | 청백사 -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
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영천(永川) |
대표 관직 | 부사 |
[정의]
조선 전기 대구에 은거한 영천이씨 대구 입향조.
[가계]
이보관(李甫款)[?~?]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흡(李洽)이고, 할아버지는 판도판서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부사직을 지낸 이현실(李玄實)이고, 어머니는 보승낭장 장표(張彪)의 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형은 충장공(忠莊公) 이보흠(李甫欽)이다.
[활동 사항]
이보관은 영천 대전리[현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서 태어나 1434년(세종 16)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440년 문과에 급제하여 풍저창(豊儲倉) 부사를 역임하였다. 1457년(세조 3) 형 이보흠이 지순흥군사(知順興郡事)로 재임 중 순흥[현 경상북도 영주시]에 유배와 있던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보관은 형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고향인 영천의 선산에 매장하였고, 대구로 피신하여 이름을 이세보(李世輔)로 고치고 숨어 살았다. 대구는 이보흠이 세종 때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군수]를 역임하였던 곳이다. 이보관은 영조 때 신원이 되었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묘소]
이보관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보관은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의 청백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