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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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曹希參 |
영어공식명칭 | Jo Huicham[Jo Huisam] |
이칭/별칭 | 조희삼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활동 사항]
조희참(曹希參)[?~1382]은 대구 수성(壽城)[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람이다. 벼슬이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에 이르렀다. 1382년(우왕 8)에 왜구가 침입하자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을 하였는데,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로 향하던 중 가리현(加里縣)[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이르자 강물이 불어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왜구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왜구가 어머니를 해치려고 하자 조희참은 어머니 앞을 막아서며 대신 죽었다. 체복사(體覆使) 조준(趙浚)이 우왕(禑王)에게 보고하자 왕이 듣고 매우 슬퍼하였으며 정표(旌表)를 내리고 표창하였다. 또한 가족들의 부역과 조세를 면제하여 주고 재물을 내렸다.
[상훈과 추모]
1383년 9월에 조준이 비문을 지어 대구현령 방용길(房龍吉)이 조희참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조희참의 효행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대구읍지(大丘邑誌)』 등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