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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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承侃 |
영어공식명칭 | Park Seunggan |
이칭/별칭 | 자열(子悅),인암(忍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병호 |
[정의]
조선 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박승간(朴承侃)[1508~1588]의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자열(子悅), 호는 인암(忍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주판관 박병균(朴秉均)이고, 할아버지는 부사직을 지낸 박숙(朴䃞)이다. 아버지는 박형(朴珩)이고, 어머니는 김만일(金萬鎰)의 딸 예안김씨(禮安金氏)이다. 부인은 참봉 권호(權顥)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활동 사항]
박승간은 1508년(중종 3) 영천(榮川)[현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태어나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40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저작·성균관사성·개령현감을 역임하였다. 1556년(명종 11) 경상우도경차관을 거쳐 1559년에는 강릉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 1562년 경상도 점마어사(點馬御史)에 임명되어 경상도 지역을 순시하였고, 1567년(선조 즉위년) 대구부사로 부임하여 연경서원(硏經書院)의 건립과 유지에 많은 후원을 하였다.
박승간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의 태백산 자락으로 거처를 옮겼다. 황준량(黃俊良)·류희춘(柳希春)·구봉령(具鳳齡)·채무일(蔡無逸)·류중영(柳仲郢) 등과 교유하며 학문에 매진하다가 1588년 사망하였다.
[묘소]
박승간의 묘소는 봉화군 봉성면 봉양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