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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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慶新 |
영어공식명칭 | Park Kyungsin |
이칭/별칭 | 중길(仲吉),한천(寒泉),삼곡(三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출생 시기/일시 | 1560년 - 박경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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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2년 - 박경신 식년 문과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18년 - 박경신 경상도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19년 - 박경신 경상도관찰사 이임 |
활동 시기/일시 | 1621년 - 박경신 병조참판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626년 - 박경신 사망 |
거주|이주지 | 한성 - 서울특별시 |
부임|활동지 |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 |
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죽산(竹山) |
대표 관직 | 해주목사|경상도관찰사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박경신(朴慶新)[1560~1626]의 본관은 죽산(竹山)이며, 자는 중길(仲吉), 호는 한천(寒泉) 또는 삼곡(三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겸문(朴兼文)이고, 할아버지는 박환(朴煥)이다. 아버지는 장령과 군수를 지낸 박사공(朴思恭)이고, 어머니는 윤징(尹澄)의 딸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심우선(沈友善)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형은 이조참의를 지낸 박경선(朴慶先)이다.
[활동 사항]
박경신은 1560년(명종 15)에 태어났다. 1582년(선조 1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도순변사 이일(李鎰)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였으며, 1593년 해주목사로 부임하여 전란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수양산성(首陽山城)을 수축하여 방비 태세를 굳건히 하였다. 1594년에는 밀양부사로 부임하여 전공을 세워 조정의 포상을 받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전주부윤으로 있으면서 적의 선봉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도망쳐 파직을 당하였고, 1600년 서흥부사로 다시 기용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동래부사·삼척부사를 역임하고 1607년 형조참의가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한 뒤에는 광주목사와 양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박경신은 1618년(광해 10)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1년 동안 재임하였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로 234-32[검단동 1325]에 있었던 소유정(小有亭)에 제영시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를 비롯한 지역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1621년 병조참판을 거쳐 1622년에는 충청도관찰사를 지냈고, 인조반정 후 탄핵되어 파직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의 파천을 호종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도성 밖으로 추방당하였다. 1626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