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72 |
---|---|
한자 | 閔義生 |
영어공식명칭 | Min Euisaeng |
이칭/별칭 | 의지(宜之),위숙(魏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도관찰출척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민의생(閔義生)[1379~1444]의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의지(宜之), 시호는 위숙(魏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민상백(閔祥伯)이고, 할아버지는 민근(閔瑾)이다. 아버지는 판서 민중리(閔中理)이고, 어머니는 유지정(柳之淀)의 딸 진주유씨(晋州柳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귀(李龜)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대사간 이륙(李稑)의 딸 평창이씨(平昌李氏)이다. 형은 민인생(閔麟生)이고, 동생은 민후생(閔厚生)이다.
[활동 사항]
민의생은 1379년(우왕 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 동진사(同進士)에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1425년(세종 7)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가 되어 승문원의 문적을 부류별로 정리하고 열람하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경기도관찰출척사와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1436년 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
민의생은 1436년 11월에 경상도관찰출척사로 부임하여 1437년 12월에 이임하였다. 경상도관찰출척사로 대구를 순행할 때 금학루(琴鶴樓)에 올라 지군사 금유(琴柔)의 시에 차운시(次韻詩)을 지었는데 이는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에 수록되어 있다.
민의생은 이후 중추원부사에 임명되었으며, 예조판서로 재임 중이던 1439년(세종 21)에는 사은사로 북경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지중추원사로 있던 1444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