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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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庾信 |
영어공식명칭 | Kim Yusin |
이칭/별칭 | 흥무대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김충희 |
[정의]
남북국시대 대구 팔공산에서 수련을 하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무관.
[가계]
김유신(金庾信)[595~673]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532년(법흥왕 19년)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해왕(仇亥王)이고, 할아버지는 신주도행군총관을 지낸 김무력(金武力)이다. 아버지는 김서현(金舒玄)이고, 어머니는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활동 사항]
김유신은 595년(진평왕 17)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 609년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을 수양하였다. 611년에는 신라의 중악(中岳)인 팔공산에 들어가 무술을 연마하였다. 『삼국사기』「김유신열전」에는 팔공산에서 수련한 이유와 결과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김유신이 17세 때 고구려, 백제, 말갈 등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외적을 평정하려는 뜻을 품고 혼자 팔공산의 석굴에 들어갔다고 한다. 팔공산의 석굴에서 나라의 환란을 막을 수 있기를 기도하였는데, 4일이 지나자 갑자기 난승(難勝)이라는 노인이 나타나 어린 나이에 삼국을 병합하려는 뜻을 가진 것을 장하게 여기고 김유신에게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김유신은 629년 고구려와의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후 숱한 공적을 인정받아 642년 압량주(押梁州)[현 경상북도 경산시]의 군주가 되었고, 이때부터 중요한 직책을 거쳐 나갔다.
김유신은 660년(태종무열왕 7)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백제 정벌에 나섰다. 이때 당나라 대장군 소정방(蘇定方)이 이끌고 온 대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고, 김유신은 그 공으로 대각간(大角干)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668년(문무왕 8)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어릴 적부터의 소망이던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 고구려 멸망 후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은 공을 인정받아 태대각간(太大角干)에 봉하여졌다. 673년 사망하였다.
[묘소]
김유신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 산7-1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유신은 835년(흥덕왕 10)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되었고, 진천읍 벽암리의 길상사(吉祥祠)와 경주시의 서악서원(西嶽書院)에 배향되었다. 진천읍 상계리에는 1999년 6월 11일 사적 제414호로 지정된 진천 김유신탄생지와 태실이 있다[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