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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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入學圖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본욱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9년 1월 30일 - 입학도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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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6월 29일 - 입학도설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소장처 | 권윤호 자택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로38길[파동] |
성격 | 고서 |
저자 | 권근 |
권책 | 1책 |
행자 | 13행 24자 주쌍행 |
규격 | 20.9×15.7㎝ |
어미 | 상흑어미(上黑魚尾) |
문화재 지정 번호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이 쓴 성리학 입문서.
[개설]
입학도설(入學圖說)은 권근(權近)[1352~1409]이 금마군(金馬郡)[현 전라북도 익산시]에 유배 중이던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초학자 교육용으로 편찬한 성리학 입문서이다. 권근은 1390년 11월 유배에서 풀려나 충주의 양촌(陽村)에 은거하면서 초고에 대하여 보완하였다. 입학도설은 총 40개의 도(圖)와 설(說)로 구성되어 있으며, 23개 도설의 내용은 권근의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에도 수록되어 있다.
[저자]
권근은 1369년(공민왕 18)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조선이 개국한 후 출사(出仕)하여 예문관 태학사(太學士), 중추원사(中樞院事),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였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길창군(吉昌君)에 봉군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시문집으로 『양촌집(陽村集)』 40권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입학도설은 1397년(태조 6) 김이음(金爾音)이 진주에서 처음으로 간행하였다[晉州本]. 초간본에는 김이음의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그 다음으로는 권근 사후에 초간본에서 빠졌던 것을 아들 권도(權蹈)와 문인 변계량(卞季良) 등이 권근의 유고(遺稿)에서 찾아 보완하여 1425년(세종 7)에 간행하였다[晉州本]. 이때 이미 간행된 전집(前集)도 함께 간행하여 입학도설의 체제가 전집·후집으로 갖추어지게 되었다. 1425년의 판본에는 변계량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입학도설은 1397년, 1425년, 1547년(명종 2), 1647년(인조 25)에 간행된 일본판본, 1929년에 간행된 것 5종이 소장되어 있다. 1929년에 간행된 책에는 인천(仁川) 채무일(蔡無逸)[1496~1546]이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또 1647년의 일본판본에 수록되어 있는 구암(龜巖) 황효공(黃孝恭)[1496~1553] 발문에 의하면 1547년(명종 2)에 중간된 것을 알 수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의 권윤호가 소장하고 있는 입학도설은 1545년(인종 1)에 전라북도 낭주[현재의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간행된 것으로 채무일의 발문이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소재 입학도설은 2019년 1월 30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형태/서지]
입학도설은 크기가 가로 20.9㎝, 세로 15.7㎝이다. 13행 24자 주쌍행(註雙行)이며, 상흑어미(上黑魚尾)가 있다.
[구성/내용]
입학도설은 전집(前集)과 후집(後集),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입학도설은 국내외에 동일한 판본이 확인되지 않아 서지학적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