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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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山亭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환성정길 21-19[서변동 108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정자.
[개설]
서산정(西山亭)은 영조·정조 때 사인(士人) 이경채(李景采)[1730~1799]를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이경채의 자는 사행(士行), 호는 만회헌(晩悔軒),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이경채는 평소 자신이 공부하던 서재를 ‘대비정사(大庇精舍)’라고 하였다. 당시 시세(時勢)가 어지러웠는데 이경채는 『맹자』에 나오는 “나의 완악함을 청렴하게 하고 나의 나약함을 일으켜 일깨워 주는 것은 그 오직 백이의 청렴함이다[廉我頑而立我懦者 其惟伯夷之淸乎]”라는 구절을 신조로 삼고 무태리(無怠里)의 서산(西山)에 은거하며 세상에 나오지 않고 위기지학에 힘을 기울였다. 서산은 팔공산이 무태리로 내려와 도덕산(道德山)으로 이어지고 다시 내려와 우뚝 솟은 망일봉(望日峰) 아래에 있다. 서산은 백이(伯夷)가 채미가(採薇歌)를 부르며 은거한 은(殷)나라의 ‘서산’을 의미한다.
이경채가 타계한 후 후손들이 유허지에 서산정을 건립하였다. 1926년 방후손(傍後孫) 진사 이병운(李柄運)이 지은 「서산정기(西山亭記)」가 있다. 달성(達城) 하동규(夏東奎)는 「백운정 계회후 등서산정(白雲亭契會後登西山亭)」이라는 시에서 “어젯밤 새로 비가 내려 한결같이 먼지를 씻으니, 서산정에 유람하는 나그네 흥취를 자제하기 어렵네[新雨前宵. 西亭遊客興難裁]”라고 읊었다.
[위치]
서산정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1084에 있다.
[형태]
서산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현황]
서산정은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