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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22
한자 國債報償運動 女性 記念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2가 4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2006년 2월 28일연표보기 -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5월 3일 -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 현충 시설로 지정
현 소재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2가 42]지도보기
원소재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동인동2가 42]
성격 비석
관련 인물 서채봉[정운갑 모 서씨]|정경주[서병규 처 정씨]|김달준[정운하 처 김씨]|정말경[서학균 처 정씨]|최실경[서석균 처 최씨]|이덕수[서덕균 처 리씨]|김수원 처 배씨
재질 오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290㎝[높이]|80㎝[두께]
관리자 대구광역시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에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가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개설]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가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7년 설립한 기념비이다.

[건립 경위]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2006년 2월 28일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를 세웠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국채보상취지서」가 만들어지고 북후정 대회가 일어난 지 2일 만에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 사는 부인 7명이 스스로 조직한 단체이다. 남일동에 사는 부인 7명은 서채봉[정운갑 모 서씨], 정경주[서병규 처 정씨], 김달준[정운하 처 김씨], 정말경[서학균 처 정씨], 최실경[서석균 처 최씨], 이덕수[서덕균 처 리씨], 김수원 처 배씨이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우리나라 민족운동 및 여성운동에 끼친 영향력이 크다. 첫째, 남성 중심으로 펼쳐지던 국채보상운동을 여성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여성도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3개월 동안 60전 이상을 모았다. 둘째, 국채보상운동기금을 마련하는 방식을 다변화시켰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은반지, 은장도 등을 기부함으로써 금연, 의연금 위주로 이루어지던 초기 국채보상운동의 기금 확보 방법을 한 단계 높이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셋째,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활동을 계기도 전국적으로 여성이 주도가 된 국채보상운동단체들이 만들어져 각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런 측면에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 근대 여성운동의 효시이자 확산에 큰 영향을 끼친 단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을 기리기 위하여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를 세웠다.

[위치]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안에 있다.

[형태]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가 기부하였던 ‘은반지’를 소재로 하여 쌍가락지 모양으로 만들었다. 높이는 290㎝, 두께는 80㎝이고 오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대구광역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금석문]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의 앞면에는 패물폐지부인회가 쓴 격문인 「경고 아 부인동포라」와 기부자, 기부 내용이 새겨져 있다. 앞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고 아 부인동포라 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오. 듣사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 먹고 대전을 구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요.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 중 일물이 아니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 소존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작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물구하고 혈심 의연하와 국채를 청장하심이 천만행심.

정미 정월 십일[1907년 2월 23일]

발기인에 대구 동상 남일동

정운갑 모 서씨 은진환 일불 두냥중

서병규 처 정씨 은장도 일개 두냥중

정운하 처 김씨 은지환 일불 한냥 구돈중

서학균 처 정씨 은지환 일불 두냥중

서석균 처 최씨 은지환 일불 한냥 오돈중

서덕균 처 리씨 은지환 일불 한냥 오돈중 은가지 삼개

김수원 처 배씨 은연화 일개 두냥 구돈중”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 건립문은 다음과 같다.

“국채보상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은 눈부시었다. 여학생은 물론 가정의 부인에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성 못지않게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지금까지 역사의 뒷면에 있던 여성들이 나라의 위기에 당면하여 역사의 전면에 뛰쳐나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남일동 7부인회는 비녀와 반지를 뽑고 깊이 숨겨두었던 보석을 국채보상금으로 헌납함으로써 그 후 수많은 여성들이 그 뒤를 따르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로써 한국 근대 여성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의 전형이 된 것이다. 우리는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즈음하여 여기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경고 아 부인동포라」라는 역사적인 격문과 함께 전국 28개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의 이름을 돌에 새겨 청사에 길이 남긴다. 2006년 2월 21일(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김영호”

[현황]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는 2007년 5월 3일 대구지방보훈청에 의하여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다. 대구지방보훈청은 2008년 1월 24일 ‘이달의 대구광역시 현충 시설’로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를 선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는 경제 구국 운동을 대표하는 국채보상운동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을 보여 주는 기념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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