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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626
한자 統一民主靑年同盟結成準備委員會 慶北聯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61년 3월 12일연표보기 -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 결성
해체 시기/일시 1961년 5월 이후연표보기 -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 해산
성격 사회단체

[정의]

1961년 3월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개설]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은 1961년 3월 12일 대구에서 결성되었다. 통일민주청년동맹 경북연맹의 위원장은 사회대중당 출신의 경북 도의원이자 통일사회당 경북도당 준비위원회 구성원인 최일(崔一)이었다.

[설립 목적]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4·19혁명 이후 경북 지역의 진보적 청년들을 결집하여 민주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변천]

이승만 정권의 억압 속에서도 진보적인 청년 학생들은 여러 서클을 형성하여 사회 변혁을 준비하고 있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박기출·김배영·김한덕·김영옥 등을 중심으로 한 부산의 성민학회와 김영광·우홍선 등이 중심이던 통일청년회, 그리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서클인 신진회의 일부 성원들이 합류하여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는 정식 결성대회를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민주민족청년동맹과 함께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통합 논의가 제기되어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1961년 5·16쿠데타로 인해 두 단체 모두 강제 해산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은 1961년 3월 31일 대구·경북 지역의 각 정당·사회단체 및 학생단체 대표가 모여 결성한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노동단체학생단체공동투쟁위원회[이하 ‘이대악법반대경북공투위’]에 참여하였다. 이대악법반대경북공투위는 1961년 4월 2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대구역 광장에서 당국의 집회 불허에도 불구하고 이대악법반대대구궐기대회 및 횃불데모를 개최하였다.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을 비롯한 이대악법반대경북공투위는 “장 정권 물러가라”, “악질 경찰관 물러가라”, “이대악법은 살인법이다. 죽음으로 막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회를 강행하였다. 이대악법반대대구궐기대회 및 횃불데모는 5·16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소에서 ‘대구데모사건’으로 명명되었으며, 통일민주청년동맹 경북연맹의 주요 구성원인 위원장 최일과 조직부장 이승춘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통일민주청년동맹결성준비위원회 경북연맹4·19혁명 시기 진보적 청년단체로서 이대악법반대운동한미경협반대운동, 자주적 평화통일운동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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