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536 |
---|---|
한자 | 嶺南親睦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27년 9월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 등 영남 인사들이 결성한 친목 단체.
[설립 목적]
영남친목회(嶺南親睦會)는 1927년 9월 4일 서울의 국일관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 출신을 비롯한 영남 인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결성한 단체였다. 영남친목회는 신간회운동이 발흥하는 상황에서 결성되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신간회는 1927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의 대립을 막고 항일 투쟁에서 민족 단일 전선을 펼 목적으로 조직된 민족운동 단체로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가 회장이었다. 영남친목회의 창립 선언을 사회주의진영의 안광천이 초안하여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현황]
영남친목회가 창립하자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반대 성명이 발표되었고, ‘지방열 고취 단체 박멸’이라는 구호가 사회운동단체를 뒤덮었다. 대구에서도 1927년 9월 말에서 10월에 걸쳐 대구청년동맹과 신간회 대구지회의 연합으로 영남친목회를 지방열 고취 단체로 규정하고, 영남친목회를 ‘박멸’할 것을 결의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영남친목회에 대한 반대 활동이 전개된 가장 큰 배경은 영남친목회가 신간회를 통한 전민족 운동의 단일 전선을 방해하고 장애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 우려에 따라 반동 단체로 규정되었고, ‘엄멸’, ‘박멸’의 대상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