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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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人力車 人夫 紛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26년 대구 사판조 인력거조합의 노동자들이 사납금 인하를 요구하며 벌인 노동 쟁의.
[역사적 배경]
1926년 무렵 대구 사판조(寺阪組) 인력거조합 노동자 24명은 낮은 임금에 경기 불황을 이유로 조합에 납부하는 사납금 인하를 요구하며 파업을 전개하였다.
[경과]
사판조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은 하루 사납금 70전을 50전으로 인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24년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인력거노우회에 대하여 방해 활동을 펼친 경험이 있는 사판조 인력거조합의 운영주인 일본인 다케우치 유헤이[竹內柳平]는 인력거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에 불응하였다. 이에 인력거 노동자들이 1926년 2월 4일부터 일제히 파업에 돌입하였다. 다시 진행된 협의에서 사판조 인력거조합에서는 70전에서 10전 인하한 60전을 하루 사납금으로 제시하였으나 노동자들은 거부하며 파업을 이어갔다.
[결과]
사판조 인력거조합과 노동자들 사이에 협의가 진행되어 차대로 하루 60전을 사판조 인력거조합에 내는 것으로 합의를 이루었다. 1926년 2월 5일부터 인력거 노동자들은 현장에 복귀하여 인력거 운행을 재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 사판조 인력거 노동자들의 파업은 과도한 사납금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경제생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이 일부 수용된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