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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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煙草試作場 |
이칭/별칭 | 대구연초장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설치된 연초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던 기관.
[개설]
경상북도에서는 1906년부터 입담배가 생산되면서 대구를 비롯한 경산, 김천, 영천, 안동 등 경상북도 전역에서 담배 생산이 이루어졌다. 또한 1908년 6월 남한연초제조주식회사(南韓煙草製造株式會社), 1909년 마에노조[前之園] 공장, 1910년 오이시[大石] 상회 등 연초 제조 공장이 설립되면서 연초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910년대부터 대구 공업의 주종은 바로 연초 제조업이었다. 1920년대가 되면서 조선총독부 전매국 산하 대구연초장은 전국 연초 생산량의 33%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설립 목적]
조선총독부는 1910년부터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 적합한 연초 품종을 개발 및 생산하고, 연초 제반 업무를 관할하기 위하여 대구연초시작장(大邱煙草試作場)을 설립하였다.
[변천]
탁지부는 1910년 탁지부 사세국 산하 연초시작장과 양조시험소를 설치하였다. 이때 전국 최초로 대전과 함께 대구에 대구연초시작장이 설치되었다. 1912년 3월 탁지부 사세국에 전매과가 신설되면서 대구에 설치된 대구연초시작장은 폐지되고, 탁지부 대구지방출장소가 설치되었다. 탁지부 대구지방출장소는 연초뿐 아니라 제염(製鹽) 사무, 홍삼 전매 등을 담당하였다.
일제는 1921년 3월 30일 전매국 관제 개정에 근거하여 전매국 내 대구지방전매국을 설립하고, 담배 공장으로 대구연초제조창을 운영하였다. 또한 1921년 4월 1일「연초전매령」을 공포하고 연초를 전매품으로 관리하였다. 이때부터 대구지방전매국은 기존의 소금, 인삼, 아편의 전매 업무 외에 연초 전매 업무까지 담당하였다. 대구연초제조창은 1945년 8월 광복 이후 전매청 대구연초제조창, 한국담배인삼공사 대구연초제조창으로 유지되었다.
한국담배인삼공사는 1994년 노후한 담배 제조창을 정비하고 경영합리화를 도모하고자 제조창 4개소를 폐쇄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 대구연초제조창도 1999년 7월 8일 폐쇄되었다. 폐쇄되었던 한국담배인삼공사 대구연초제조창은 2008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예술 창작벨트 조성’ 계획의 시범 사업으로 확정되어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2012년 7월 대구예술발전소로 거듭났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연초시작장에서는 주로 연초 관련 업무를 관장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총독·총감, 각 부의 장관 등이 1911년 10월 25일 장관 회의에서 대구연초시작장에서 제조한 연초를 시범적으로 흡연을 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조선총독부가 대구 및 경상북도 일대의 연초 제조업에 상당히 공을 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연초 재배에 가장 큰 주적은 바로 잡초[기심이]였는데 대구연초시작장에서는 잡초를 제거할 대책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연초시작장은 1910년대 식민 농업정책의 특성과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 산업인 연초 제조업이 자리잡는 과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