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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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商工協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조선인 상공업 진흥 단체.
[설립 목적]
대구상공협회(大邱商工協會)는 대구의 조선인 상공업자들이 일본 상공인들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는 것에 대항하여 조선인 상공업의 발전과 단결을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변천]
1927년 9월 18일 열린 대구 지역 상공업자 유지 간담회(有志懇談會)에서 서상일(徐相日)의 취지 설명을 듣고 30여 명의 참석자들은 토론 후 만장일치로 대구상공협회 조직을 가결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12명의 준비 위원의 준비 끝에 1927년 10월 28일 100여 명의 상공업자가 모인 가운데 ‘대구상공협회 발기 총회’가 열렸다. 발기 총회에서는 회비, 회원 자격, 회원 구성, 발기인 및 준비 위원 선정, 창립총회 개최일 등의 사항을 결정하였다. 1927년 11월 9일 475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상공협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상공협회의 창립총회에서 회장 서기하(徐基夏), 부회장 김정오, 상무평의원 김내명(金乃明)·서상일(徐相日)·김상원(金相元)·배영덕·백낙희(白樂熙)·이효철(李孝澈)·양상학(梁相鶴)·최익준(崔益俊)·김상숙(金相淑)·허지(許智)·박만성(朴晩成)·지이홍·최종해(崔鍾海)·박노익(朴老益)·강치운·정치규(鄭致奎)·박연순·배유형(裵裕亨)·윤영렬을 선임하였다.
대구상공협회의 주요 사업은 첫째, 상공업의 발달을 위한 방안 연구 및 실행, 둘째, 상공업의 상황과 통계조사 및 발표, 셋째, 상공업자의 의뢰 사항 조사 및 소개(紹介), 넷째, 상공업 관련 쟁의 중재 및 조정 등이었다. 대구상공협회 회원은 특별 회원과 보통 회원으로 나뉘었다. 월 회비의 경우 특별 회원은 60전, 보통 회원은 30전이었다.
1928년 무렵 대구 지역 조선인 상공 업체의 총수는 1,653개소였고, 이 중 대구상공협회의 회원의 상공 업체는 466개소로 약 28%가 대구상공협회에 가입하고 있었다. 대구상공협회는 대구의 대자본가가 운영하는 상공 업체와 함께하고자 하였으나 당사자들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대구상공협회는 대구의 중소 상공업자가 주축이 된 상공 단체였다.
대구상공협회는 조선과 대구의 상공업 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조선의 산업은 봉건적이어서 식민지 경제에서 생겨나는 모든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대구의 산업에 대하여서는 ‘놀랄 만큼 빈약하다’고 분석하였다. 빈약의 원인을 금융경색, 기술 유치, 경영방식의 불합리, 대자본의 압박 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구상공협회는 광범위한 조선인의 대자본 회사의 설립, 조선인 중심의 상공업·생산 애호 운동의 진작, 상공업자의 견인과 권고, 권리와 의무의 자각, 친절·염매·진열 개선, 무성의 극복, 불친절·기일 불이행 개선, 가격 부정의 교정, 신용·근면 등을 제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상공협회는 일본 상공인들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는 것에 대항하며 조선인 상공업자의 발전과 단결을 꾀하는 한편 조선인 중소 자본가를 육성하여 지역 상공업을 발전시킴으로써 조선인 중심의 경제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