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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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北綜合大學期成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5년 10월 20일 - 종합대학설립준비위원회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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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시기/일시 | 1945년 11월 15일 - 경북종합대학기성회 발족 |
최초 설립지 | 경북산업주식회사 -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
최초 설립지 | 구 경상북도청 회의실 -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
성격 | 교육운동 단체 |
[정의]
1945년 대구광역시에서 발족하였던 종합 대학 설립 추진 단체.
[설립 목적]
경북종합대학기성회(慶北綜合大學期成會)는 광복 후 교육 재건의 중요성을 절감한 대구의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와 지역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하여 종합대학을 설립할 목적으로 발족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북종합대학기성회는 1945년 10월 20일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에 있던 경북산업주식회사 2층에서 대구의 유지 30여 명이 모여 종합대학 설립의 필요성과 기성(期成) 방법을 토의하고 구성한 종합대학설립준비위원회로부터 비롯되었다. 종합대학설립준비위원회는 실행 위원으로 이규원, 장인환, 김충학, 김성국, 윤홍렬, 김동진, 임상조, 김찬수, 조용기 등을 선정하였다.
종합대학설립준비위원회는 1945년 10월 31일 중구 포정동에 있던 경상북도청 회의실에서 제2회 종합대학설립준비위원회를 개최하여 준비 위원을 확대하고 실행 위원을 보강하였다. 아울러 법문학부, 농학부, 의학부의 3개 단과대학의 설립과 기금 3000만 원 조달, 향교 재단 흡수, 경상북도 도민의 협찬 등을 결의하였다. 종합대학설립준비위원회는 1945년 11월 15일 제3회 확대 준비위원회를 경상북도청 회의실에서 개최하여 종합대학설립준비위원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경상북도 내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망라하여 1946년 개교를 목표로 경북종합대학기성회를 발족하였다. 경북종합대학기성회의 임원은 회장 최준, 부회장 고병간·이규원, 실행 위원에 조용기, 위원은 대구 20명, 12개 군 대표 2명 등으로 구성하고 1945년 12월 말 경북종합대학기성회 대구지부를 결성하였다.
경북종합대학기성회는 1946년 9월 정해붕을 회장으로 하는 경북종합대학재단 조성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경북종합대학재단 조성위원회는 1945년 11월 27일 경상북도 도지사 명의로 대구국립종합대학 설립인가를 문교부 장관에게 신청하였다. 그러나 해방 직후의 혼탁한 국내정세와 서울에서는 국대안반대운동이 벌어지는 상황이어서 경북종합대학기성회가 목표로 하는 ‘대구국립종합대학’ 설립은 어렵게 되었다.
경북종합대학기성회는 종합대학 설립 추진을 백지화하고 규모를 축소하여 1947년 3월 중구 남산동에 있던 대건중학교 교사 일부를 빌려 가칭 ‘대구문리과대학’을 개교하였다. 1947년 8월 21일 교명을 ‘대구대학’으로 결정한 경북종합대학기성회는 운영체도 국립을 포기하고 사립안을 채택하였다. 1947년 9월 정식으로 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았고 1947년 10월 1일 대구대학 설립으로 이어졌다. 대구대학의 초대 이사장은 정해붕(鄭海鵬)이었고, 초대 학장은 전봉빈(田鳳彬)이었다. 대구대학은 영문학과, 철학과, 법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 응용화학과 등 6개 학과에 교수 16명으로 1947년 10월 7일부터 학부 강의를 시작하였다.
[현황]
대구대학은 1950년 설립된 청구대학과 통합하여 1967년 12월 영남대학교로 개편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북종합대학기성회는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 종합대학 설립 추진을 통하여 국가와 지역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한 활동을 벌임으로써 지역의 교육 활성화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