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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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場市 |
이칭/별칭 | 향시,허시,시장,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조선시대 대구 지역에서 대체로 5일마다 열리던 정기시장.
[개설]
조선시대 시장은 일반적으로 장시, 혹은 장(場)이나 시(市)라고 불렀다. 지방에서 열리는 시장이라 해서 향시(鄕市), 또는 넓은 공터에서 열리기 때문에 허시(墟市)라고도 불렀다. 장시는 매일 열리는 상설 시장이 아니었고, 일정한 간격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열리는 정기시장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한 달, 보름 또는 열흘 간격으로 열렸으나, 조선 후기에는 일반적으로 5일마다 열렸다. 19세기 전반 전국의 장시는 모두 1,052개였으며, 인근의 장시끼리 열리는 날짜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변천]
조선 후기 대부분 영역 내에는 10개의 장시가 있었으며, 조선 말에는 7개로 줄었다. 읍장(邑場)[읍내장, 부내장, 큰장이라고도 함]은 부의 서쪽으로 2리[현재의 오토바이골목]에 있었으며, 매월 2일과 7일에 열리는 장이었다. 남문 밖의 신장(新場)[신시]은 매달 4일과 9일에 열렸는데, 1851년에 백성들의 청원에 따라 동문 밖 신동(新洞)으로 옮겼다. 동문 밖[옛 대구백화점 근처]에 있다고 하여 동문시장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20세기 초 면적은 서문시장의 약 절반인 2,500평[약 8,264㎡] 정도였다. 1917년 8월 일부를 덕산동으로 옮겼고, 1919년 7월 동성정 ‘구시장’이 달성군청 청사 이전 후보지가 되면서, 동성로에 있던 시장의 나머지 점포들도 모두 덕산정[덕산동]으로 옮겨 3,476평[약 11,491㎡]이 되었다.
서쪽의 화원장(花園場)은 3일과 8일, 하빈장(河濱場)은 5일과 10일, 남쪽의 풍각장(豊角場)[현재 청도군 소속]은 1일과 6일, 북쪽의 해안장(解顔場)은 5일과 10일, 백안장(百安場)은 3일과 8일에 열렸다. 동쪽의 범어장(凡於場), 남쪽의 오동원장(梧桐院場), 북쪽의 무태장(無怠場)은 인근의 장시에 통폐합되어 없어졌다. 장시에서는 지역 내의 생산품만이 아니라 해산물 등 먼 거리에서 나는 상품도 거래되었다. 장시를 순회하는 장돌뱅이들이 각지의 물품을 가져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상권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현풍현의 경우에는 17세기 초의 기록이 있다. 『포산지』[1635년] 장시를 보면 현 내에서 매월 여섯 번 장이 섰는데, 1633년(인조 11년) 매월 2일, 7일로 개정(改定)하였다. 그러나 18세기 말 『현풍현읍지(玄風縣邑誌)』[1786년] 장시를 보면 읍시(邑市)[구천시장]와 별개로 현 남쪽 7리 마산면 차천 변에 차천시(車川市)가 5일과 10일에 열렸다. 이후 20세기 초 원교동 구천시장은 5일, 신기동의 차천시장은 음력 10일로 조정되어 10일마다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