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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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壽城區] |
영어공식명칭 | Eosayong|Woodcutter’s Song |
이칭/별칭 | 「초부가」,「얼사영」,「가마구타령」,「나무꾼소리」,「들노래」,「어산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7월 19일 - 어사용[수성구] 대구직할시 수성구 범물동과 만촌동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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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 시기/일시 | 1987년 7월 23일 - 어사용[수성구] 대구직할시 수성구 범물동과 만촌동에서 채록 |
채록지 | 어사용[수성구] 채록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 |
채록지 | 어사용[수성구] 채록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
가창권역 |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노동요|유희요 |
형식 구분 | 독창 |
가창자/시연자 | 박재현|최학도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노동요.
[개설]
「어사용」은 영남 지역 산간에서 불리던 나무꾼의 신세타령 노래로서 노동요와 유희요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초부가(樵父歌)」, 「얼사영」, 「가마구타령」, 「나무꾼소리」, 「들노래」, 「어산용」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대구광역시에서 채록된 「어사용」[수성구] 역시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채록/수집 상황]
1987년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1987년 7월 19일과 1987년 7월 23일 두 차례에 걸쳐 대구직할시 수성구 범물동의 제보자 박재현과 수성구 만촌동의 제보자 최학도로부터 「어사용」[수성구]이 채록되었다. 제보자 박재현의 경우 범물동에서 태어난 당시 나이 80세의 순수 토박이로서 외지에서 살아 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지역 고유의 소리를 제대로 구사하였다.
[구성 및 형식]
「어사용」[수성구]은 독창 형식으로 부르는데, 형식이나 장단에서 자유롭다.
[내용]
범물동에서 채록한 「어사용」[수성구]의 사설은 다음과 같다.
“바늘 같이도 약한 몸이/ 태산 같은 병을 실어/약을 쓰니 약발 받나/ 돈을 쓰니 돈발 받나/약발 돈발 아니 받고/ 병은 점점 깊어진다/ 고이고이 길러 가지고/ 태산 같이도 믿었더니/ 만사가 허서로다/ 공통산천이 왠 말인고/ 저 건네 저 양지에/ 나물 뜯는 저 큰아가/ 이 건네 이 들공을 건너오소/ 참초 미역초 번들번들 씨러졌구만-/ 저 건너 저 응달에 풀 바는 저 총각아/ 이 건너 이 양지로 건너오소/ 대풀참물이 사리하구매 이리 오소/ 저 건네 저 들 밑에 풍풍지는 저 물소리 들어 보소/ 우리 엄마가 오뉴월 보리밥을 찬물에 말아 놓고/ 밥 묵으라고 날 부르는 소리가 처량구나.”
[현황]
현재는 나무를 하러 다니지 않기 때문에 「어사용」[수성구]이 노동 현장에서 불리지는 않는다. 다만, 나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단편으로나마 남아 있고, 각 농요보존회에서도 전승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어사용」[수성구]은 한 지역에서만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가 구연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