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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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仙- |
영어공식명칭 | Yeongseonmot |
이칭/별칭 | 영선지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우종현 |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었던 저수지.
[개설]
영선못은 1768년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읍지』에는 기록이 없으나 조선 말에 축조된 것으로 전하여지고 있다.
영선못은 조선 말에 어떤 고위 관리가 사비를 들여 12년 동안의 공사 끝에 축조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도사가 나타나 영선못 자리를 가리키면서 “저곳에 집을 지으면 나라에 아주 해로운 일이 생길 것이고, 12년에 걸쳐 못을 만들면 나라에 아주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깊었던 그 관리가 사비를 들여 못을 축조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변천]
대구광역시는 북쪽의 팔공산과 남쪽의 앞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큰비가 내리면 크고 작은 하천과 강들의 범람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그리하여 수해를 막고자 수로를 돌리고 제방을 축조하는 한편 많은 저수지를 만들었다. 지금은 도시가 확장되면서 사라지거나 매립되었지만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때부터 전하여 오는 못과 저수지가 여럿 있었는데, 영선못도 그중의 하나이다. 1918년 「대구지형도」에서는 수도산 남서쪽에 영선못으로 추정되는 저수지가 보인다.
‘영선지(靈仙池)’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1924년 『동아일보』이다. 당시 『동아일보』는 달성공원과 함께 영선지를 대구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소개하였다. 1938년에는 영선못에서 영남체육회가 주최한 빙상경기대회가 열렸음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현황]
영선못은 대구교육대학교 동쪽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1970년 완전히 매립되어 현재는 영선시장과 주택가가 위치하고 있다. 영선시장 입구에는 ‘영선못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과 대구도시철도 2호선 환승역인 반월당역과는 두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으며, 대구도시철도 1호선과 대구도시철도 3호선 환승역인 명덕역과는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이다.
대구 출신으로 우리나라 사진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최계복(崔季福)의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집[2009년 10월 28일 발간]을 보면 표지 사진으로 1933년 작인 「영선못의 봄」이 실려 있다. 「영선못의 봄」 사진은 잘 차려 입은 여인들과 중절모에 양복을 차려 입은 신사들이 유람선에 올라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정경을 담은 것이다. 「영선못의 봄」 사진은 영선못이 대구 중심가와 근접하였고 도시민들의 휴식처로 유명하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