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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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信託管理反對共同鬪爭委員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45년 12월 30일 대구 지역에서 90개 사회단체의 연합으로 결성된 신탁통치반대운동 단체.
[개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삼상회의의 결정안이 신탁통치안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대구 지역에서 우익의 조선독립경북촉진회와 좌익의 경상북도인민위원회는 각각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대응책을 모색하였다. 두 단체는 12월 29일 신탁 관리 반대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1945년 12월 30일 조선독립경북촉진회와 경북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90개 단체가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위하여 조선신탁관리반대공동투쟁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주요 내용]
조선신탁관리반대공동투쟁위원회는 대표위원에 배승환[인위], 최성한[독촉]을 선출하고, 내무부, 기획부, 실천부, 선전부 등 4개 부서를 두었다. 내무부는 최문식[인위], 김성곤[인위], 김영달[독촉], 기획부는 최일행[독촉], 황태성[인위] 장대회[독촉], 신학균[인위], 실천부는 이재복[인위], 정문택[인위], 하재팔[인위], 선전부는 신철수[인위], 백기만[인위], 박해용[독촉] 등이 활약하였다.
공투위는 “우리 민족은 패전 국민도, 위임통치를 받던 국민도 아니며 절대 자주독립을 할 때까지 신탁 관리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결성 선언문을 채택하고, 미소 양국 및 연합국에 선언문을 보냈다. 동시에 시민과 경상북도 도내 각 군에도 발송하였다. 조선신탁관리반대공동투쟁위원회는 1946년 1월 2일 대구역 광장에서 신탁통치 배격 시민대회를 개최하였다. 신탁통치 배격 시민대회는 최성한의 개회사로 시작되어 치안대장 신철수, 경북독립촉진회 대표위원 김하정, 경상북도 대리지사 김의균의 순서로 신탁 관리를 반대하는 연설이 진행되었다. 시민대회를 마친 뒤 참가자들은 시가행진을 벌였다.
조선신탁관리반대공동투쟁위원회는 신탁 관리 반대 및 완전한 자주독립을 지향한 정치단체로서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에 이은 두 번째의 좌우합작이었다. 하지만 조선신탁관리반대공동투쟁위원회는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안 전문이 알려지게 되면서 분화가 불가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