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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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雲庵 |
영어음역 | Baegunam |
영어의미역 | Baegunam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내창로 617-80[괴동리 223-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안식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 소속 사찰.
[개설]
백운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충주군 북쪽 태봉산에 있다고 하였다. 사원 입구 남쪽에 충주 경종 태실과 태실비가 있다. 백운암의 법당 안에는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이 있는데,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및 대원사 충주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충주의 뛰어난 철조여래좌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립경위 및 변천]
빌미산 자락에 위치한 백운암은 조선 후기 왕실의 무녀인 진령군(眞靈君) 여대감(女大監)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대웅전에 안치된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에 관련한 설화도 전해진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 명성황후가 충주 지방으로 피신 왔을 때 한 무당이 곧 환궁하게 될 것을 예언했는데, 예언대로 되자 무당을 서울로 불러 진령군 여대감이라는 벼슬을 내려주었다. 하루는 여대감의 꿈에 백의철불(白衣鐵佛)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안치해 달라고 하여 절을 세워 백운암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1886년 진령군이 인법당(因法堂)을 지은 이후 법당과 요사를 함께 사용하다가, 1977년 요사를 두어 법당과 요사를 분리하고 법당을 대웅전으로 편액하였으며, 1991년에는 삼성각을 짓고 요사를 수리하여 현재의 가람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99년 주지 진송(眞松)이 국비를 지원받아 대웅전을 재건하였고, 2002년 축대 보수는 물론 도로 공사를 통해 비포장길이었던 사찰의 진입로를 보수하였다.
[현황]
백운암의 시설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웅전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삼성각 및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도 수는 300여 명이다.
[관련문화재]
2007년 10월 24일에 보물 제1527호로 지정된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이 있다.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대원사 충주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충주 지역의 정치력과 안정된 경제, 문화적 기반 위에서 행해진 불사들로서, 지역적인 특징과 함께 불상 제작 양식의 변천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외에도 백운암에는 1888년에 제작된 탱화 3점, 1965년에 제작된 탱화 3점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반자(飯子)가 1점 전해지고 있는데 ‘을해이월십일보림사조납반자일구중십사근□□진사이중형(乙亥二月十日寶林寺造衲飯子一口重拾四斤□□進士李仲衡)’이란 명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