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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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企業都市-革新都市誘致決意大會 |
영어의미역 | Enterprise Type Innovation City Attract Resolution Rally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근배 |
[정의]
2004년 7월부터 1여 년간 충주시가 기업 도시와 혁신 도시로 선정될 수 있도록 펼친 시민 운동.
[역사적 배경]
노무현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는 수도권의 과밀화에 따른 제반 문제 해결과 지역의 균형 발전을 통한 새로운 국가발전의 성장 동력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기업의 지방 분산 육성과 국가 기관의 지역 분산이라는 관점에서 기업 도시와 혁신 도시라는 두 가지 어젠다(agenda)를 제시하였고, 이에 따라 각 자치단체에서는 이를 유치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의지를 결집시켜 경쟁적으로 유치 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충주는 충주댐 건설로 많은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해 나가고, 이렇다 할 기업조차 없어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해마다 인구가 2,000~3,000명씩 줄어들자 시민들 사이에 위기감이 팽배해 가고 있었다. 이 같은 충주 지역 사회의 분위기 속에 던져진 정부 정책의 어젠다는 희망 찬 미래에 대한 보증 수표나 다름없이 인식되었고, 민선 자치단체장의 역량과도 맞먹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어젠다가 발표되자 충주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혁신 도시든, 기업 도시든 이루어내야 한다는 주민들의 바람이 시민 정서로 이어져 전 시민의 역량을 집중하기에 이르렀다.
[목적]
충주시에 혁신 도시를 유치함으로써 청주로 도청을 빼앗겨 잃었던 100여 년 전의 옛 영화를 되찾고, 기업 도시를 유치하여 관계 기업과 주민이 하나 되어 협치의 발전적 도시를 이루어 명실상부한 한반도의 중심 도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경과]
혁신 도시 유치를 위해 충주시는 재빨리 각계인사를 모아 충주시 공공기관유치위원회를 구성함과 동시에 공공기관충주유치기획단(1팀, 3개반, 16명)을 구성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행복 도시가 건설되는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에는 혁신 도시의 건설을 제외한다는 방침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충청북도 북부 지역에서는 거센 항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충주·제천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 주민들은 행복 도시로부터 충주·제천이 80㎞ 이상 떨어져 행복 도시 건설로 인한 혜택은 커녕 오히려 행복 도시로의 인구 유출을 유발시켜 지역의 황폐화를 촉진시킬 뿐이며, 단지 충청권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북부권을 배제하는 방침은 또 하나의 역차별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였다.
충주시와 시민들은 우선 공공 기관 유치보다 충청북도 북부권 배제 방침의 철회를 이끌어내기 위해 2004년 7월 모든 시민과 사회 단체가 참여하는 ‘충북 북부권 역차별 시정촉구를 위한 범시민 협의회’를 구성하여 투쟁에 나섰다. 7월 23일 범시민결의대회를 1만 여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충주실내체육관 광장 앞에서 연 것을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일련의 노력에도 정부 방침의 철회가 이루어지지 않자 충주시민들은 상경 투쟁에 돌입하였다. 2004년 8월 24일 지역의 발전을 위해 충주시 역사상 최대·최초의 대정부 상경 투쟁을 벌였다. 이날 3,000여 충주시민들은 50여 대의 버스를 타고 서울특별시 세종로에 있는 중앙 청사 앞 시민의 광장에 모여 공공 기관 이전 북부 지역 배제 철회를 촉구하는 시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농악대의 공연으로 시작되어 충주사랑 시민 합창과 구호 제창, 시민 발언, 호소문 낭독, 상소문 낭독, 살풀이 춤, 삭발식, 결의문 낭독, 출정식, 택견 시연, 사물놀이, 충주희망 풍선날리기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7명의 시민 대표들이 삭발을 하며 투쟁을 선언했고, 충주 지역 소속 노인회와 유림회에서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재현하며 간절히 호소하였다. 마침내 이날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은 북부권 배제 철회를 밝히기에 이르렀고, 이듬해 6월 이에 따른 조치로 충청북도에도 12개의 공공 기관을 이전해 혁신 도시를 건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혁신 도시 유치는 도내 자치단체 간의 치열한 유치전으로 바뀌었다. 충북권 배제 방침에 대한 투쟁에는 팔짱을 끼고 있던 청원을 비롯한 전 지역이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충주시는 북부권 배제 방침 철회의 주역이며, 기업 도시와 혁신 도시의 결합을 통한 이상적 도시 건설의 당위성을 들어 10만 시민 서명서 전달, 유치 대상 공공 기관 방문, 관련 부처의 방문, 2만 시민의 유치 결의 대회, 조찬 기도회, 토론회, 세미나, 촛불집회 등을 열며 시민들의 뜨거운 정성을 모아나갔다.
특히 12월의 혁신 도시 입지 선정을 앞두고 공공기관충주시유치위원회는 혁신도시 유치 염원 삼보일배 시민대행진을 벌이기로 결의하여, 10월 12일부터 23일까지 충청북도의 옛 도청이었던 관아공원을 출발해 음성 비산리까지 30개 단체 1만 여 회원들이 10일 동안 삼보일배를 이어가며 혁신 도시 충주 유치의 염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전략적으로 제천과 공동 접경 지역에 유치 장소를 정하고 공동 유치를 하는 방안을 위한 협의는 물론, 마지막으로 음성과 공조해 음성 소이와 충주 주덕을 잇는 지역의 공동 유치안을 협의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부가 공공 기관의 이전을 추진하면서 이전 대상 기관들에게 유리한 결정권을 줌으로써 결국은 충청북도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한 치라도 가까워지려는 이전 대상 기관들의 주장이 반영된 진천·음성 지역으로 혁신 도시가 결정되었다.
기업 도시 유치에서는 한창희 충주시장이 충청북도에서는 유일하게 2005년 4월 지식기반형 기업 도시 시범 사업을 신청하여, 같은 지식기반형 분야에서 인근 원주시와 경쟁을 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원주시는 이미 의료기기 특구로 지정되어 있는데다 도시 규모, 서울과의 접근성, 정치적 영향력에서 충주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 때문에 충주에서는 지는 게임을 한다는 비관론과 혁신 도시와 기업 도시 유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또 기업 도시는 언제라도 신청할 수 있는 것이라며 혁신 도시에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혼조하는 여건 속에서 유치 운동이 시작되었다.
2003년부터 혁신 도시 유치를 위해 나섰던 충주시는 혁신 도시 유치와 기업 도시 유치를 병행해 가며, 한편으로는 기업의 컨소시엄 구성과 평가 기준에 합당한 여건 조성, 계획서 작성, 논리 개발, 시민 결집, 기업 도시 학습, 경쟁 지역과의 경쟁·투쟁·섭외·홍보 등을 아우르는 일들을 밤낮없이 펼쳐나갔다.
포스코건설, 대한주택공사, 이수건설, 대교, 임광토건과 기업 도시 참여 협의를 거쳐 기본합의서를 4월 13일 체결한 데 이어, 대소원면 일대 15개 리에 토지 거래 허가 구역을 지정하고 전략기획팀을 구성하였다. 이윽고 5월 19일 기업도시유치위원회를 구성하고 재경 인사 초청 간담회를 열며 유치를 위한 10만 시민 서명을 받아 건설교통부에 전달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계속했다.
충주시는 낙후 정도에서 원주를 앞서고 있어 지역 발전이 시급한 여건인데다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 전국 어디서나 2시간대의 접근성, 청주공항과의 접근성, 풍부한 공업 용수, 청정 환경, 인력 공급, 국·공유지가 70%를 넘는 저렴한 토지 공급 등을 적극 홍보하며 평가 기준에 합당한 여건을 만들어나갔다.
시민들은 연일 계속되는 각종 결의 대회, 서명 운동, 상경 집회, 촛불 집회, 삼보일배, 설명회 등에 참가하여 ‘어떻게든 우리 후손들에게 100년 발전의 충주의 꿈을 물려주어야 한다’며 동참하였고, 충주시내 거리에는 시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물결을 이루었다. 심사단이 충주에 올 때마다 심사원들이 감격할 정도로 뜨거운 정성의 환영 인파가 가는 길마다 넘쳐흘렀다.
시의 당면 과제를 관철하기 위해 시민 성금이 모아진 것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혁신 도시 유치를 위해 3600여만 원이 모였고, 기업 도시 유치가 함께 추진되면서 7100여만 원이 들어와 성금 총액이 1억 2480여만 원이나 되었다. 기업체, 단체의 기탁금이 많았지만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이 저금통을 들고 나오기도 하였다.
[결과]
2005년 7월 8일 충주시 승격 50주년이 되는 날 충주시는 전국의 6개 기업 도시 선정 지역 가운데 2위의 점수를 얻어서 마침내 지식기반형 시범 기업 도시, 즉 기업 도시로 선정되었다. 반면에 혁신 도시 유치는 진천·음성 지역으로 선정되어 혁신 도시 유치에는 실패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업 도시와 혁신 도시 유치를 위한 충주시민들의 눈물겨운 투쟁과 노력과 정성은 충주 역사상 유례없는 시민들의 하나 됨을 보여주었고, 더 이상 지역의 황폐화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시민들의 마지막 절규이자 몸부림이었다. 또한 충주시민들의 단합된 힘에 의해 이뤄낸 의미 있는 성공의 경험이자 보람이었다. 그 보람은 충주 번영의 100년을 앞당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지를 시민들에게 심어주었고, 시민 의식의 변화까지 이끌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