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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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彈琴臺- |
영어의미역 | Association Ferry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464-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일성 |
성격 | 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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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464-2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남한강 가에 있던 나루.
[개설]
한강의 수운은 강원도 영월에서 서울의 용산이나 마포까지이며 그 중심에 충주가 있다. 충주에는 고려시대 때 덕흥창, 조선시대 때 가흥창이 있어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여 세금으로 받은 곡식 등의 물품을 수송하였고,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사선(私船)에 의한 경강상인들이 한강을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였다. 이때 경강상인들에 의해 사용되고 발달되었던 나루는 목계이다. 그 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한 강운이 시작되면서 탄금대 나루가 개척되어 탄금대 나루에서 용산까지 물건을 수송하기 시작하였다.
[건립경위]
1913년 내국통운주식회사는 일선형 범선(日鮮形帆船: 돛단배) 8척을 가지고 서울 용산에서 충주의 탄금대 나루 구간까지 화물 수송을 개시함에 따라 탄금대 나루는 한강 수운의 충주 종착점이 되었다.
[변천]
탄금대 나루는 탄금대의 서쪽 끝에 있어 신라시대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뜯다가 피로하면 강가에서 쉬었다고 하여 금휴포(琴休浦)라 하였으며, 경치 또한 수려하였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강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고, 물길이 편리하여 양진창(楊津倉)을 지었던 곳이며, 충주시 칠금동에서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로 건너는 나루가 있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 탄금대 나루에 선착장을 건립하여 충주의 화물을 싣고 서울로 가는 선착장이 되었으나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1940년경 폐쇄되었다. 1985년 충주조정지댐 조성으로 탄금호가 생기면서 탄금대 나루는 수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