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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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應獬將軍墓出土服飾 |
영어의미역 | General Lee Eung-Hae`s Tomb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47-5[중앙탑길 112-2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상은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서 출토된 조선 중기 복식.
[개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1592~1598)을 계기로 복식 제도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묘주(墓主)인 이응해(李應獬)[1547~1626]는 임진왜란 전후의 무관으로, 훈련도정을 거쳐 전라좌수사, 온성부사, 제주목사, 전라병사 등을 역임하고 당상관으로 평양판관을 지낸 사람이다. 이응해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은 임진왜란 전후의 변모된 복식을 보여주고 있다.
출토된 복식은 깃이 둥근 단령이 4점, 깃이 직선이고 전상이 달린 도포가 3점, 깃이 직선이고 트임이 있는 포인 창의가 9점, 깃이 직선인 직령포가 3점, 깃이 직선이고 허리절개선이 있으며 상의와 치마가 연결된 형태의 철릭이 9점, 깃이 네모난 형태인 방령이 3점, 깃이 직선이고 짧은 포인 주의가 1점, 여자 저고리 1점, 염습의로 이불 1점, 요 1점, 종교 12점, 횡교 2점, 자리 1점 등이 있다.
출토된 직물은 견직물이 가장 많으며 그 중에서도 평견직물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마섬유로는 저마와 대마가 있고, 면섬유와 모섬유는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았으며, 누비 안에는 모두 목화솜이 사용되었다.
출토된 복식 중 문양이 시문된 직물은 모두 14점으로 봉황문이 1점, 운문(雲紋)이 1점, 운보문(雲寶紋)이 2점, 화문(花紋)이 5점, 연화보문이 1점, 화조문(花鳥紋)이 1점, 화조길상 보문이 4점이다. 보문 중에 극(戟) 문양은 관운이 형통하고 신속하게 승진할 것을 기원하는 길상무늬인데, 남자의 복식에 사용되었다.
2006년 9월 15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연원]
깃이 둥근 단령은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에서 들어온 옷으로 고려를 지나 조선시대까지 관복으로 입었다. 깃이 직선인 직령포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입어온 우리 고유의 옷이다. 철릭은 고려시대에 원나라에서 들어온 옷으로 조선시대까지 남성 활동복으로 입었다. 도포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외출복으로 입었으며 방령포는 무관들의 옷이다.
[형태]
출토된 단령은 밑받침 옷인 직령과 고정되지 않고 시침실로 살짝 징구어 놓은 형태로, 단령에 직령이 고정되기 전의 모습이다. 그 당시 직령은 반드시 단령의 밑받침 옷으로만 착용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단령과 독립적으로 착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단령과 직령이 각기 독립적인 의복의 하나였다가 점차 상복(常服)을 구성하는 일습복으로 고정되는 중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출토된 단(緞)에서는 독특한 무늬가 많은데 특히 단령의 받침옷으로 사용된 직령을 제작한 옷감은 절화희조문단(折花喜鳥紋緞)으로, 지금까지 보고된 바 없는 직물무늬이다.
새의 부리에 화려한 리본을 물고 있는 이러한 문양은 이란 사산조의 문양적 특성으로 우리나라와 이란 문화권의 교류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토된 복식의 직물 문양은 남자 복식임에도 화문(花紋)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이제까지 직물 도안에서 볼 수 없던 길상도안이 화문과 복합되어 시문되고 있다.
[용도]
궁 출입시 외출복인 단령과 평상시 외출복인 도포, 평상복인 창의·직령포, 활동복인 철릭과 무관의 복식인 방령으로 나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현재 단령은 전통혼례나 폐백을 드릴 때 신랑들이 주로 입으며, 도포는 제사 지낼 때 의례적인 포로 입는다. 철릭은 일부 무속인들이 입는다. 이응해 묘에서 출토된 복식은 모두 포류(袍類)로, 다양한 형태의 포(砲)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의 남성 겉옷의 형태, 바느질법, 직물 및 문양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응해 묘에서 출토된 포류로는 단령·직령·창의·방령 등 다양하여 동 시대에 유행한 포류의 일괄 비교가 가능하다.
또한 복식 변천의 격동기라고 할 수 있는 임진왜란 전후의 복식 변천을 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특히 이응해는 임진왜란을 거친 인물이면서 왕실의 신임이 두터웠기 때문에 그의 의복은 다른 출토복식과는 달리 재질이나 형태면에서 매우 뛰어나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겉감이 얇게 비치는 단령, 방령포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