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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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于伐城 |
영어의미역 | Ubeol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집필자 | 이창훈 |
[정의]
삼국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구려 성(城)의 하나.
[개설]
충주에 있는 충주 고구려비에 이름이 전하는 우벌성은 5세기 고구려가 충주 지역까지 장악한 후 쌓았던 성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충주 고구려비 외에 다른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그 실체를 확인할 만한 유적이나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벌성과 관련한 정보는 매우 불확실한 형편이다.
비문의 내용을 통해 본다면, 우벌성이 고구려와 신라가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양국의 접경 지역이었음은 분명하다. 이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대를 거친 5세기 당시 고구려의 남쪽 세력 판도를 확인하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비문에 보이는 양국의 관계는 고구려가 주도했으며, 신라를 동이(東夷)로 지칭하였던 점은 광개토대왕비와 함께 당시 고구려인이 독자적인 천하관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위치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우벌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우벌성의 ‘우(于)’를 처소격 어조사로 보고, 벌성(伐城)만을 지명으로 보아 서라벌, 즉 경주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우벌성을 하나의 지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며, 그러한 입장에서 ‘벌’자에 주목하여 이벌지현(伊伐支縣)이란 삼국시대 지명을 우벌성에 비정하고, 그 위치를 현재의 경상북도 순흥이나 영주 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교통로에 따른 주요 거점을 설정하고 이벌지현을 풍기로 비정하여 우벌성을 풍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우벌성을 장미산성으로 비정하고 이를 국원성의 치소로 본 견해도 일찍이 제시되었고, 장미산성과 마주보고 있는 보련산성을 우벌성으로 비정한 견해도 있다. 우벌성이 기록된 충주 고구려비가 충주에 있는 점이나, 비문의 내용에서 우벌성이 고구려의 태자 등과 신라의 매금(왕)이 만나는 곳임을 감안할 때, 비록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충주 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관련기록]
우벌성에 관한 기록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입석부락 입구에 세워져 있는 충주 고구려비의 명문(銘文) 내용이 유일하다. 우벌성이 포함된 구절을 보면, 앞면에 “……십이월이십삼일갑인 동이매금상하지우벌성 교래전부태사자다우환노주부귀□□□경□모인삼백(十二月卄三日甲寅 東夷寐錦上下至于伐城 敎來前部太使者多亏桓奴主簿貴□□□境□募人三百)……”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왼쪽 면에도 우벌성이 등장하지만 전후 글자를 확인할 수 없어 내용 파악은 어렵다.
마모된 부분이 많고 단편적인 내용으로 말미암아 해석에 논란은 많지만, 앞면 해당 부분의 내용은 대략 12월 23일 갑인(甲寅)일에 동이 매금(신라 왕)의 상하가 우벌성에 도착하였고, 고구려 왕의 교(敎)에 따라 전부 대사자 다우환노와 주부 귀○[德]이 300명을 모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주 고구려비의 존재와 내용은 5세기 당시 고구려가 충주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유물로써 확인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