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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155
한자 倭館-
영어의미역 Waegwan Ferry
이칭/별칭 왜관도선장(倭館渡船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시설,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장영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옛 나루터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낙동강 제방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낙동강 제방에 있던 나루터.

[개설]

일제강점기 왜관리 낙동강 제방 중간 지점, 현재 6리와 7리 경계 지점에 있던 나루터로 남쪽 지방과 교역할 때 이용한 선박이나 강 건너 기산 쪽 강정나루터와 마주하면서 나룻배로 화물이나 사람을 부리는 곳이다. 왜관리 낙동강 연안 중간 지점에 설치된 나루터라 왜관나루터 또는 왜관도선장이라고 불렀다.

[건립경위]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었던 시절에 성주와 기산 지방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달구지에 싣고 강정나루까지 와서 달구지와 함께 배에 싣고 왜관으로 건너 왜관나루터 언덕 위에 당시 경상북도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 남일정미소에서 곡식을 도정하여 전국 각지에서 온 상인들에게 쌀을 팔고, 부산 등 남쪽 지방에서 뱃길로 운반된 소금을 비롯한 해산물을 사서 돌아가는 교통 시설로 건립되었다.

[변천]

1939년에 경부선 철도가 복선화 되면서 낙동강 복선 철교가 새로이 건설되고, 단선철도 때 철교로 이용한 다리를 인도교로 변경하기 전까지 강정나루터는 왜관과 성주 간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당시 사람은 물론 짐을 실은 소달구지와 버스 그리고 화물 트럭까지도 싣고 운반하였다. 인도교를 이용한 후부터 1970년대까지도 기산 방면으로 가는 장(場)꾼이나 통학생들은 많이 이용하였고, 1년 내 이용한 배삯은 봄·가을 추수 때 갚았다고 한다.

[현황]

지금은 나루터를 건설할 때 박은 말목이 일부 남아 있고, 콘크리트 바닥 일부가 거북이 등처럼 손상되어 오래된 흔적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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