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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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時習 |
영어공식명칭 | Kim Siseup |
이칭/별칭 | 열경(悅卿),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췌세옹(贅世翁),설잠(雪岑),청간(淸簡),벽산청은(碧山淸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성주 |
출생 시기/일시 | 1435년(세종 17) - 김시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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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김시습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철원에 은거하였다가 전국을 유랑 |
활동 시기/일시 | 1465년 - 김시습 경주 금오산에 칩거하며 『금오신화』 저술 |
몰년 시기/일시 | 1493년 - 김시습 사망 |
출생지 | 한양 - 서울특별시 |
사당|배향지 | 구은사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
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대표 관직|경력 | 증 이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철원 지역에 은거하였던 문인.
[가계]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이다. 시호는 청간(淸簡),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주목사 김윤주(金允柱)이고, 할아버지는 오위부장 김겸간(金謙侃)이다. 아버지는 충순위 김일성(金日省)이며, 어머니는 선사장씨(仙槎張氏)이다.
[활동 사항]
김시습은 1435년(세종 17) 한양[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외할아버지에게 글자를 배우면서부터 한시를 지은 천재였고, 다섯 살 때는 궁궐에 불려가 세종 앞에서 시를 지어 칭찬을 받았다. 1455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3일간 통곡하고 보던 책들을 모두 불사른 뒤 조상치(曺尙治)·박제(朴濟)·박도(朴渡)·박규손(朴奎孫)·박효손(朴孝孫)·박천손(朴千孫)·박인손(朴璘孫)·박계손(朴季孫)과 함께 철원에 은거하였다. 김시습 등은 김화의 초막동에 숨어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부르며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규탄하고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김시습은 이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전국을 유랑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경주 남산의 한 봉우리인 금오산에 칩거하며 『금오신화』를 집필한 뒤 한양으로 올라가 수락산 등지에서 10여 년간 승려로 지냈다. 이후 환속하여 지내다가 성종 대에 정국이 어지러워지자 다시 강원도 일대를 유랑하였고, 1493년(성종 24) 부여 무량사에 머물던 중 사망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김시습을 비롯한 이맹전(李孟專)·조여(趙旅)·원호(元昊)·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을 생육신(生六臣)이라 부르며 절개를 칭송하였다.
김시습은 철원과 깊은 인연이 있고 매월대(梅月臺)에 얽힌 이야기와 시문(詩文)이 전한다.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와 잠곡리에 걸친 복계산에 신선바위라고 부르는 넓이 3칸 정도의 높은 너럭바위가 있는데, 주위에 울창한 숲과 맑은 샘이 있고 몸을 숨기기에 적합한 굴도 있어 천혜의 은둔처라 할 만하다. 김시습이 한동안 이 신선바위에 머물면서 지방의 은사(隱士)들과 교류하였으므로 김시습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을 매월동이라고 하고 바위가 있는 산을 매월대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학문과 저술]
김시습의 저서로는 『매월당집』, 『금오신화』,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 『탕유관호록』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김시습은 1707년(숙종 33) 사헌부집의에 추증되었다. 1782년(정조 6)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784년 청간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김시습은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에 있는 구은사(九隱祠)에 배향되었다. 구은사에서는 김시습을 포함한 구의사(九義士)의 충절을 기리는 제례를 매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