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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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家煥 |
영어공식명칭 | Lee Gahwan |
이칭/별칭 | 정조(廷藻),금대(錦帶),정헌(貞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성주 |
[정의]
조선 후기 파직되어 강원도 철원 지역에 머물렀던 문신이자 실학자.
[가계]
이가환(李家煥)[1742~1801]의 본관은 여주(驪州)이고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명진(李明鎭)이고, 할아버지는 이침(李沉)이다. 아버지는 이용휴(李用休)이며, 어머니는 유헌장(柳憲章)의 딸 진주유씨(晉州柳氏)이다.
[활동 사항]
이가환은 1742년(영조 18) 한성부 황화방에서 태어났다. 1771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77년(정조 1) 증광시에 문과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1778년 2월 시행된 문신제술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후 정조의 사랑을 받아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다.
이가환은 1784년 북경에 다녀온 조카 이승훈(李承薰)의 영향으로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교리서를 읽고 연구하면서 열성 신자가 되었다. 이후 천주교 박해가 점점 심해지자 천주교인들과 거리를 두고 교리 연구도 중단하였으며, 광주부윤으로 재임 중이던 179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를 탄압하기도 하였다. 이가환은 신유박해 뒤 성균관대사성·개성유수를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으나 1995년 주문모(周文謨) 신부 입국 사건에 연루되어 충주목사로 좌천된 뒤 파직되었다.
이가환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지난날을 뉘우치며 다시 천주교에 몸담았고, 천주교 탄압이 극심하던 1801년(순조 1) 2월 9일 이승훈·정약용(丁若鏞) 등과 함께 끌려가 국문을 받다가 2월 24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이가환이 철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787년 4월이다. 이가환은 평안도 정주목사로 있을 때 반대파의 모함으로 파직되어 김화 지역에 내려와 지냈으며, 1788년 채제공(蔡濟恭)이 등용되자 다시 승지로 나가게 되어 1년 정도 머물렀다. 당시의 처량하였던 생활은 『금대시집(錦帶詩集)』에 잘 나타나 있다.
[학문과 저술]
이가환의 저서로는 2권 1책의 『금대집(錦帶集)』이 있다. 이가환의 학문은 집안의 가풍을 이어 실학을 추구하였으며, 특히 천문학과 수학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