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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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化地區 合同殉義碑 |
영어공식명칭 | Gimhwajigu Hapdongsunuibi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산13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원미경 |
건립 시기/일시 | 1958년 07월 - 목조 순의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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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복원 시기/일시 | 1959년 4월 - 목조 순의비, 석축, 계단 등 보수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84년 06월 06일 - 김화지구 합동순의비 건립 |
현 소재지 | 김화지구 합동순의비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당현동 |
원소재지 | 반공애국순의유적묘비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당현동 |
성격 | 비 |
관련 인물 | 화랑공작대|반공이사 |
재질 | 콘크리트[대석]|대리석[비]|오석[명판]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10m[비신]|높이 2m[기단]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에 있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학살된 김화 지역 희생자를 기리는 비.
[개설]
김화 지역은 38선 북쪽에 있어 1945년 광복과 동시에 공산 치하에 놓여 공산당의 학정에 시달렸다. 자유를 찾아 38선을 넘어 탈출한 김화 주민들은 ‘화랑공작대’를 결성하여 38선 이북 고향인 김화 지역 일원에 반공 활동 거점을 구축하고 반공 투쟁을 감행하였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20일 새벽 인민군 패잔병과 중공군이 대거 기습으로 포위하여 미처 탈출하지 못한 치안대원, 공작대원, 반공인사와 가족 78명이 연행되여 무참히 학살당하고 사체들은 유기되었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박림환(朴琳煥)은 밤을 이용해 시신을 몇 곳에 가매장해 놓았고, 1955년 4월 20일 수복 지구 입주와 동시에 당시 면장 노철수(盧喆洙), 이장 박완식(朴完植), 지방 유지 김용성(金容聲) 등 여러 명 주민들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희생자 유골을 합장하고 분묘를 마련하여 간소한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1955년 9월 30일 군관민 다수가 참석하여 처음으로 위령제를 거행하였고 반공순의자 78위(位)의 넋을 길이 추모하고 유적을 영원히 보존 관리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58년 7월 목조 순의비가 건립되었고, 1984년 6월 6일 김화지구 합동순의비(金化地區合同殉義碑)가 건립되었다.
[건립 경위]
1956년 이후부터 김화 지역에 거주하는 반공청년단 30명이 묘역 제초와 보수 관리를 해 왔고, 1958년 7월 반공청년단에서 목조(木造)로 순의비를 세웠다. 1959년 4월 지역에 주둔한 제6사단 공병대가 묘 주위 석축과 계단, 묘비 등을 중수(重修)하였다. 1984년 6월 6일 근남 면민, 철원 군민, 김화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철원군에서 군비 2750만 원과 군부대 장비 지원[800만 원 상당]으로 김화지구 합동순의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김화지구 합동순의비는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당현동에 있다.
[형태]
김화지구 합동순의비는 콘크리트 기단 위에 콘크리트로 만든 높이 10m의 구조물 사이에 대리석으로 된 비가 세워져 있다. 비신의 높이는 10m이고 기단의 높이는 2m이다.
[금석문]
김화지구 합동순의비는 앞면에 ‘김화지구 합동순의비(金化地區合同殉義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2리와 육단리 사이에 있는 당고개 정상에 김화지구 합동순의비가 세워져 있다. 김화지구 합동순의비 옆에는 운장벌판이 펼쳐져 있고 멀리 오성산과 북녁 땅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수복지구 철원[김화]은 공산 치하와 6·25전쟁 기간에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희생과 피해가 극심하였던 지역이다. 김화지구 합동순의비는 희생자들의 후손에 의해 실상이 밝혀지고 희생자를 기리는 비가 세워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