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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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Juldarigi |
영어의미역 | tug-of-war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유지영 |
[정의]
사람들이 두 패로 나눠 굵은 줄을 서로 잡아당겨 승패를 가르는 민속놀이.
[개설]
줄다리기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등 동아시아 일원에 널리 분포하는 놀이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물을 관장하던 용신(龍神)이다. 줄다리기는 줄을 용으로 여겨 암용(암줄, 여자를 상징)과 숫용(숫줄, 남자를 상징)의 만남과 결합으로 온 마을과 지역이 하나가 되는 대동(大同)의 계기로 삼아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전통 민속놀이이다.
[변천]
줄다리기는 조선시대에 충청도와 경기도의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청주지역은 정월 대보름 행사와 청주사랑어울모임, 흥덕구 모충동 구룡축제에서 대동놀이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현황]
청주의 줄다기기는 1923년 일제강점기 때 간행된 『청주연혁지(淸州沿革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제는 1919년 삼일만세운동을 기화로 달아오르던 독립의 열기를 차단하기 위하여 시민들의 집회 일체를 강압적으로 금지시켰다. 이 결과 청주의 대표적인 정월 대보름 행사였던 줄다리기도 중단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1923년 이른 바 시구개정(市區改正)사업을 통하여 대대적인 시가지 정비와 시장 개설 준공을 기념하고 선전하기 하기 위하여 줄다리기 행사를 다시 열었다.
줄다리기는 사람들이 줄을 엮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집에서 틀과 짚(藁)을 가지고 나오거나 시내에 있는 모든 새끼줄(繩切)까지 수집하고 이것을 엮어서 점차로 굵고 길게 만들어간다. 시내 한 복판에 하나의 선을 그어 동서 둘로 나누고 부근의 동네까지도 합세하여 2개조로 하였다. 지금도 남아있는 말인 동지내, 서지내는 여기서 유래한다.
20여일에 걸쳐 완성된 줄은 길이만 약 100칸(間), 180m였고 굵기는 술통 지름만한 1m나 되었다. 특히 이같은 규모는 국내와 일본에서 조차 유래가 없을 정도로 장대하였다고 전해진다.
줄다리기는 무심천(無心川)을 사이에 두고 40여개 마을 주민들이 지금의 상당구, 흥덕구로 나뉜 것 처럼 동과 서로 편을 갈라 시합을 벌였다.
수 천 명의 장정들이 '어기여차', '어기여차'하면서 줄을 당기고, 각 동네별로 응원대는 큰 깃발과 징, 북, 괭과리 등을 가지고 응원을 하였다. 무심천(無心川) 둑에는 수 만명의 군중이 밀려 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며칠간 계속된 줄다리기 끝에 이긴 쪽은 풍년이 든다고 기뻐하였으며 줄은 이긴 쪽이 가져가 매각하였다.
[현황]
줄다리기 행사는 현대에 와서 청주시가 주최하는 지역축제인 청주사랑어울마당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2005년 5월에 열린 청주예술의 전당 문자의 거리에서 어울마당 행사의 하나로 열렸던 줄다리기는 중앙동을 비롯한 상당구의 13개 행정동과 사직1동을 비롯한 흥덕구의 16개 행정동 등 총 29개 동별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을 가렸다. 한 팀은 남성 15명, 여성 5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된다.
또한 흥덕구 모충동에서 열리는 구룡축제 때 줄다리기를 한다. 2003년부터 매년 열리는 모충동 지역축제인 구룡축제에서는 어르신들과 초중고 학생들이 함께 길이 30m의 용줄을 만들어 모충교 위에서 과거 전통 그대로 길놀이를 하고 줄다리기를 재현한다.
또한 각급 기관과 단체의 체육대회, 각급 학교의 운동회에서 줄다리기가 하나의 인기있는 종목으로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