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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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聚奎戶口單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1873년 경상도 청도군 중동면에 거주하고 있던 박취규의 호구 단자.
[저자]
「박취규 호구 단자(朴聚奎 戶口 單子)」의 작성자는 해당 호(戶)의 호주인 박취규이다. 박취규는 본관이 밀양(密陽)이고, 직역(職役)이 유학(幼學)이며, 1817년[정축] 생으로 호구 단자를 제출하던 당시 57세였다. 경상도 청도군 중동면(中東面) 길부리(吉富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곳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일대이다. 신지리에는 지금까지 밀양 박씨(密陽 朴氏) 일문이 세거해 오고 있다.
[편찬/간행 경위]
조선 시대 각 고을의 호구 사실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호적을 작성하였다. 호적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고을의 각 호마다 호구 자료를 제출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호구 단자이다. 호구 단자에는 호주의 나이, 직역, 거주지, 가족, 사조(四祖), 처의 사조, 노비 등을 기재하였다. 「박취규 호구 단자」도 이 같은 사유로 1873년 박취규가 청도군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하였다.
[형태/서지]
1매이며, 크기는 가로 51㎝, 세로 52㎝이다. 좌·우측과 문서 가운데에 결락이 있다.
[구성/내용]
호구 단자의 첫 번째 줄에는 ‘동치 12년 계유 월 일 청도군(同治 十二年 癸酉 月日 淸道君)’이라 하여, 1873년 청도군에 제출된 것임이 명기되어 있다. 두 번째 줄에는 ‘제4호 유학 박취규 년 57 정축 본 밀양 주 중동면 길부리(第四戶 幼學 朴聚奎 年五十七 丁丑 本密陽 住 中東面 吉富里)’가 명기되어 있어, 호수와 호주의 신상 및 거주지가 확인된다.
세 번째 줄부터는 호주의 4조와 가족이 순서대로 기입되어 있다. 호주의 부친은 학생(學生) 박세광(朴世光)[원문은 결락이 있어 ‘光’만 확인], 조부는 학생 박덕양(朴德陽), 증조부는 학생 박상홍(朴尙弘), 외조부는 학생 김경구(金慶九)[본관 경주]로 기재되어 있으며, 31세의 아들 박민탁(朴珉琢), 며느리 김해 김씨(金海 金氏)와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어 칸을 내려 좌측 하단부에 노비를 기재하였는데, 당시 박취규는 월적(粵迪)이라 부르던 54세의 노(奴) 1명을 거느리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한편 「박취규 호구 단자」와 함께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는 박취규가 사망한 뒤, 호주가 된 아들 박민탁의 1878년 호구 단자가 함께 소장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후반 청도 지역 사회 구성원의 존재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같은 시기의 동일 지역에서 작성된 호적 자료를 통해 다른 지역과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