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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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下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봉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자연 마을이 여러 곳 있어도 알려지지 않은 산촌이다. 밀양군에 속하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봉산동과 정하동을 병합하여 봉하리라 하였다. 마을로는 고래들, 숲걸, 산말[山里], 봉산(鳳山, 奉山)[오노리(吾老里)], 양지 마을, 용귀 마을이 있다.
고래들은 곡평(谷坪)이라고 하며 계곡이 깊어 논에 물이 마르지 않아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어 고래들이라고 한다. 동제를 모시던 당나무가 있고 당집이 있어서 당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숲걸은 숲이 있어서 숲걸이라고 하며, 노거수가 있어 마을 형성이 오래된 것을 보여준다. 산말은 산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산말이라고 부르고 산리(山里)라고 표기한다.
봉산은 옛날 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신주와 신주를 담는 궤를 만들 밤나무를 심고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금지하던 산이라서 봉산이라고 했다. 마을이 다섯 곳이라고 해서 오로리라고도 했다고 전해진다. 양지 마을은 봉산 마을 서북쪽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있다고 하여 양지 마을이다. 용귀 마을은 보통 산을 용으로 많이 표현을 하는데, 이곳 역시 높은 산에 위치하여 용귀라고 부른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원래 밀양군의 비입지였던 고며면(古旀面)이었다가 밀양군 상동면으로 개칭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봉산동과 정하동을 병합하여 봉하동이라 하고, 운문면으로 이속되었다. 1988년 봉하동에서 봉하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구룡산과 사룡산에서 내려온 산등 사이로 형성된 마을이다. 정상리에서 내려온 물과 마일리에서 내려온 물이 봉하리를 거쳐 지촌리으로 흘러들어가는 중간에 비교적 넓은 지대에 논이 있다. 산곡에 형성된 논과 밭에서는 자연 마을마다 다른 농사를 짓고 있는데, 용귀는 높은 지대에 형성된 마을이라 전적으로 밭농사를 짓고 있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8.84㎢이며, 총 106가구에 194명[남자 100명, 여자 9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내칠리, 서쪽은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송림리·부일리, 남쪽은 운문면 지촌리, 북쪽은 운문면 정상리·마일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봉하리의 자연 마을은 고래들, 숲걸, 산말[山里], 봉산(鳳山, 奉山)[오노리(吾老里)], 양지 마을, 용귀 마을 등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구성된 봉하리의 중심 지역은 고봉, 즉 고래들 마을이다. 북쪽 구릉지에 취락한 마을로 경사진 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정상리와 경계 지점에 있고 삼당 마을과 인접해 있다. 산말은 고봉 마을 서쪽 바리박산[발백산] 중턱에 취락한 마을로서 남쪽과 북쪽은 작은 등성이가 막아주고 동쪽에는 경사도가 심하게 비탈져서 고래들로 이어져 있다. 양지 마을은 마일리에서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으로 가는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용귀 마을은 해발 600m의 고지 위에 형성되어 있다.
마일천을 따라 마일리를 거쳐 영천시 북안면으로 연결되는 지방도 921호선이 지난다. 봉하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면서 영송 연수원이 들어섰고, 숲걸에는 봉하 보건 진료소가 있다.
봉산 마을 동쪽에서 많은 수의 고분이 산재해 있고, 얇고 긴 깬 돌로 된 돌들이 열을 지어 서있지만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유물은 채집하지 못하였다. 봉하 마을 숲걸의 보건 진료소 위쪽 공터에는 입석이 하나 있는데 높이 175㎝, 넓이 80㎝, 두께 65㎝이다. 안동 권씨의 재사가 있었지만 모두 철수하고 빈집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