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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록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1939
한자 大鹿誌
이칭/별칭 목천현 읍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성봉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779년연표보기 - 안정본 『대록지』 필사본 편찬
편찬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조국인 『대록지』 목활자본 간행
성격 읍지
저자 안정복
표제 大麓誌

[정의]

조선 후기 안정복이 편찬한 목천읍지.

[개설]

『대록지(大麓誌)』는 1779년(정조 3) 당시 목천 현감(木川縣監)이던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이 편찬한 읍지이다. 이후 1871년(순조 17) 조국인(趙國仁) 등에 의해 목활자본으로 복간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안정복은 읍지를 한 지방의 역사서로 파악하고, 각 군현도 읍지를 편찬하여 자기 고장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편찬된 읍지를 통하여 읍에 대한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으며, 소략하고 오류가 많은 목천의 구읍지(舊邑誌)를 바로잡기 위하여 『대록지』를 편찬하였다.

[서지적 상황]

『대록지』는 2종이 있다. 한 종은 1779년에 안정복이 편찬한 필사본이다. 표지 서명은 『목천현 읍지(木川縣邑誌)』이나, 책의 하권 서명은 『대록지』이다. 사환 조(仕宦條)에 안정복의 재임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안정복에 의하여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 종은 1817년 조국인(趙國仁) 등이 안정복의 편찬본을 저본으로 하여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표지 서명이 『대록지』이나 다른 제목은 『목천현 읍지』로 되어 있다.

2000년 아우내 문화원에서 1817년에 간행된 『대록지』를 번역하고 원문을 부록으로 실어 『국역 대록지』를 출간하였다.

[형태]

1779년 편찬본의 크기는 가로 30.2㎝·세로 21.3㎝이며, 1817년 편찬본은 가로 34.7㎝·세로 21.1㎝이다.

[구성/내용]

1779년 편찬본은 건치 연혁(建置沿革)·관원(官員)·강역(疆域)·면리(面里)·풍속(風俗)·형승(形勝)·산천(山川)·토산(土産)·진공(進貢)·누정(樓亭)·공해(公廨)·전결(田結)·창곡(倉穀)·부세(賦稅)·늠봉(廩俸)·호구(戶口)·군액(軍額)·교원(校院)·단묘(壇廟)·제언(堤堰)·역원(驛院)·교량(橋梁)·허시(墟市)·불우(佛宇)·사환(仕宦)·성씨(姓氏)·인물(人物)·과환(科宦)·고적(古蹟)·잡사(雜事)·제영(題詠)·보유(補遺)의 32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817년 편찬본은 대록지 서(大麓誌序), 대록지 구서(大麓誌舊序), 권 상(卷上)과 권 하(卷下)로 나뉘어 총 57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상에는 군명(郡名)·건치 연혁·관원·강역·면리·풍속·형승·산천·토산·진공·누정·공해·교원·단묘·전결·창곡·부세·요역(徭役)·품봉(稟俸)·군기(軍器)·호구·군액·제언·역원·교량·허시·불우·고적·고사(古事)·제영 항목이 기술되어 있다. 권하에는 읍 선생안(邑先生案)[임관(任官)]·성씨·인물·유행(儒行)·문예(文藝)·효자(孝子)·열녀(烈女)·충의(忠義)·과환·문과(文科)·사마(司馬)·음사(蔭仕)·무직(武職)·수직(壽職)·총묘(冢墓)·보유·석오(釋誤) 항목을 싣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여지도서(輿地圖書)』 목천현조는 26개 항목이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목천현조는 17개 항목이다. 그런데 『대록지』는 필사본이 36개 항목, 목활자본은 57개 항목이나 된다. 이는 안정복이 “소략하고 오류가 많은 목천의 구읍지(舊邑誌)를 바로 잡기 위해 편찬”하였다고 밝힌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기록들에 비하여 훨씬 자세하다. 그리고 조선 후기 활발히 간행된 사찬 읍지로서, 통지와 다른 개별 읍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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