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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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存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창열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개설]
정존중(鄭存中)[1721~1798]은 천안 군수 재임 시 전염병이 돌아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수습했다. 이후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정(士靜)이다.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의 후손이며, 정제선(鄭濟先)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정형익(鄭亨益)이며, 아버지는 정홍상(鄭弘祥), 어머니는 조정만(趙正萬)의 딸 임천 조씨(林川趙氏)이다. 부인은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활동 사항]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벼슬을 지낸 뒤, 광주 목사(光州牧使)로 있을 때인 1780년(정조 4) 60세의 나이로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중용되어 1785년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잘못을 저질러 삭직되었다가, 1788년(정조 12) 다시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이듬해 승지를 지냈다. 1790년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1791년 형조 판서·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하였고, 1792년 사헌부 대사헌에 올랐으나 채제공(蔡濟恭)을 탄핵하였다가 구성부(龜城府)에 유배되었다. 1793년 해배된 뒤 1795년 지의금부사를 거쳐 이듬해 공조 판서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었다.
[묘소]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가송리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