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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29
한자 尹行敎
이칭/별칭 장문(長文)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창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61년연표보기 - 윤행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94년 - 윤행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10년 - 윤행교 승지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22년 - 윤행교 승지·부제학·이조 참의 역임
몰년 시기/일시 1725년연표보기 - 윤행교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파평(坡平)
대표 관직 대사헌|홍문관 부제학

[정의]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개설]

윤행교[1661~1725]는 1694년(숙종 2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천안 군수를 역임하였다.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장문(長文)이다. 대사간을 지낸 윤황(尹煌)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윤증(尹拯)이며, 어머니는 한성부 우윤을 지낸 권시(權諰)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병조 좌랑을 지낸 박태소(朴泰素)의 딸 무안 박씨(務安朴氏)이다.

[활동 사항]

1696년(숙종 22) 세자시강원 설서, 홍문관 부수찬·수찬·부교리, 사간원 정언·헌납 등을 지냈다. 1699년(숙종 25) 부수찬 때 각종 조세와 군역 등에 대해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시행되지는 않았다. 1728년에는 소론의 중신인 최석정(崔錫鼎)·윤지완(尹趾完)·강세구(姜世龜) 등의 억울함을 주장하다가, 노론 대신인 김창집(金昌集) 등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홍문관 교리·부응교·응교, 세자시강원 보덕·필선,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를 두루 지냈다.

1710년에는 흉년의 재해를 보고하고 여러 가지 구제책을 건의하였으며, 다음 해 당상관인 승지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늙은 부모 때문에 사퇴하였다. 이때 유계(兪棨)윤선거(尹宣擧)가 공동으로 지은 『가례원류(家禮源流)』를 유계의 후손들이 단독으로 간행하자 상소해 논란하였다.

1714년(숙종 40) 아버지 윤증이 죽자, 대신의 예를 갖추려는 조정의 은사를 사절하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선비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1722년(경종 2) 이후 승지·부제학·이조 참의 등을 지냈다.

영조 즉위 후에는 대사헌·비변사 당상·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했으나, 노론이 득세해 신임사화(辛壬士禍)를 무옥(誣獄)[무고로 인한 옥사 사건]으로 번복하자 다른 소론 관원들과 함께 파직되었다. 뒤에 유수를 지냈다.

[상훈과 추모]

선정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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