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814 |
---|---|
한자 | 李箕賓 |
이칭/별칭 | 응설(應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창열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설(應說)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이노(李櫓)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기빈(李箕賓)[1563~1625]은 1583년(선조 16) 별시(別試) 병과(丙科) 55위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천 부사에 제수되었고, 1593년에 진주 목사로 승진하였다. 이후 1599년 강계 부사, 1600년 평안도 병사, 1603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1604년 공조 참판, 1607년 삼도 수군통제사 겸 경상도 수군절도사, 1609년(광해군 1) 제주 목사, 1619년 평안도 순변사, 1625년 함경북도 절도사(咸鏡北道節度使) 등의 관직을 두루 지냈다.
1625년(인조 3)에 사망하였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이기빈을 “탐학(貪虐)을 자행한 무부(武夫)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