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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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科書押收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내수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6년 7월 8일 - 교과서 압수 사건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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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기/일시 | 1926년 7월 20일 - 교과서 압수 사건에 대응하려는 학부형 대회 개최 |
발생|시작 장소 | 천안 공립 보통학교[천안 초등학교]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황동 36 |
성격 | 교육 관련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유중천|강용균|안병석|송기 |
[정의]
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천안 공립 보통학교에서 발생한 교과서 압수 사건.
[개설]
1926년 7월 8일 천안 공립 보통학교는 수업료를 납부하지 못한 학생들의 교과서를 압수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조치를 내렸다. 이 사건 때문에 학부형 대회가 열렸으나 감독관청은 미온적인 태도로 대처하였다.
[경과]
천안 공립 보통학교가 수업료를 못낸 학생들의 교과서를 압수하고 귀가 조치를 내렸다는 소식을 접한 학부형 유중천(柳重天)과 강용균(姜龍均)은 학교로 찾아가 학교 측의 가혹한 조치에 항의하였다. 그러나 학교장은 사과를 거부하였고 이에 학부형들은 7월 10일 회의를 열어 조사 위원과 집행 위원을 각각 여섯 명 선임한 후 정확한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를 마친 후 원래는 학부형 대회를 천안 공립 보통학교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학교 측의 거부로 극장인 천안좌(天安座)에서 7월 20일 개최하였다. 학부형 대회에는 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조사 위원 대표인 안병석(安秉奭)은 학교 측의 잘못을 성토하였다. 학부형 대회에서는 학교 측의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결의문은 충청남도 도지사를 비롯한 각 해당 관청에 보내졌다. 그리고 실행 위원으로 이헌영(李憲永)·안병석·최종호(崔鍾浩)를 선출하였다.
[결과]
학부형 대회가 있고 나서 학교장 송기(宋崎)는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일본으로 돌아갔고, 감독관청인 충청남도와 천안군에서도 미온적으로 대처하였다. 또한 학부형 대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학부형 측도 이후에 지속적인 활동을 유지하지는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는 제2차 조선 교육령의 공포 이후 민족 말살을 위한 동화 교육에 주력하던 시기이다. 따라서 일본과 동일한 교육 제도와 교육 기관을 확대하여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여 한국인을 일본인화하고자 하였다. 더욱이 수업료를 납부하지 못한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의 교과서를 압수한 학교 당국의 처사와 이에 대하여 관리 감독을 이행하지 않는 관청의 태도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노예 교육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