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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남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7037
한자 桂南面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조선/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경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군 계남면 개설
개정 시기/일시 1931년 4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부천군 계남면을 부천군 소사면으로 개편
관할 지역 계남면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괴안동|소사동|범박동|원미동|춘의동|심곡동|송내동|상동|중동 일대

[정의]

일제강점기 경기도 부천 지역의 행정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1914년 4월 1일 부평군 지역의 석천면(石川面), 옥산면(玉山面), 수탄면(水呑面)을 통폐합하여 부천군 계남면으로 하였는데, 계남은 1914년에 처음 생긴 지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미 조선시대인 1700년대부터 현재의 부천 지역에서 ‘계남’이란 이름을 써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구령(李龜齡)[1679~?]은 자신의 문집인 『계남집(桂南集)』과 「계남집서(桂南集序)」에서 “내가 수주(樹州) 계양산(桂陽山)의 남쪽에 살기에 제목을 계남집이라 하였다.”라고 하여 계남이란 지명을 처음 소개하였다. 이구령의 자호 역시 ‘계남(桂南)’이었다. 그런 까닭에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이 이구령을 ‘계남어른’으로 칭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1909년 설립한 소사사립계남학교(素砂私立桂南學校) 역시 예전부터 이 지역에서 써 오던 별칭을 그대로 쓴 것이므로 계남은 1914년 이전의 부천을 지칭하던 별칭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계남면이라 명명한 것은 부천 지역의 별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주군(驪州郡) 외 6부군면(府郡面)의 폐합(廢合)에 관한 건』의 「부평군면(富平郡面) 폐합일람표(廢合一覽表)」[1914]를 보면, 계남면의 칭호에 대하여 “이 지방은 계양(桂陽) 남쪽에 있었기에 이로써 계남이라 칭했고, 석천면에 일찍이 사립학교가 있었는데 계남학교(桂南學校)라 칭하는 등의 증거가 있기에, 이에 의거하여 본 명칭을 붙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부천에서 1992년 중동에 신도시를 조성할 때 ‘계남’ 이름이 논의되었으나 중도에 중동 신도시로 바뀌었다. 하지만 ‘계남’ 지명은 계남대로, 계남빌딩, 계남초등학교, 계남중학교, 계남고등학교 등의 이름으로 많이 남아 있다. 이로 보아 ‘계남’은 지역의 선대들이 오랫동안 써 오던 유서 깊은 지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기록]

‘계남’이란 지명이 기록된 자료는 조선시대 이구령의 『계남집』과 「계남집서」,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여주군 외 6부군면의 폐합에 관한 건』의 「부평군면 폐합일람표」 등이다. 이외에도 『황성신문(皇城新聞)』 1914년 1월 14일자에 “부평군 옥산면 소사사립계남학교는 임원과 학부형(學父兄)이 열심히 장려함으로”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

계남은 조선시대 부천의 별칭으로서 계양산 남쪽인 굴포천 이남 부천 지역을 말하며, 계양산 남쪽을 모두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변천]

1931년 4월 1일 부천군계남면을 소사면으로 개편하였다. 1941년 10월 1일 소사면은 소사읍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963년 1월 1일 옛 계남면 지역의 고척리, 개봉리, 오류리, 궁리, 온수리, 항리, 천왕리가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소사읍 일원이 부천시로 승격하였다. 2020년 현재 부천시 관내에서 옛 계남면 지역은 역곡동, 괴안동, 소사동, 범박동, 원미동, 춘의동, 심곡동, 송내동, 상동, 중동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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