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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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집필자 | 한도훈 |
[정의]
경기도 부천에서 집이 이사한 날 향나무로 만든 소코뚜레를 문 앞에 걸어놓거나 안방에 걸어놓은 풍습.
[개설]
예전 부천은 주로 농사를 지어온 농촌이었기에 소는 농사일을 하는데 무엇보다 소중했다. 소가 없으면 사람의 힘으로 일을 해야 했는데 일이 더디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이 자식 키우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소를 잘 길들여서 쟁기질을 하거나 마차를 끌게 하려면 소의 코를 뚫어 코뚜레를 걸어야 했다. 소코뚜레는 물푸레나무 가지, 노간주나무 가지, 다래나무 가지 등으로 만들었다. 좀 자란 송아지 때부터 코를 뚫어 코뚜레를 묶고 여기에 쟁기나 마차의 고삐를 매었다. 집이 이사하는 날, 이 소코뚜레를 맨 먼저 방문 앞에 걸기부터 했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소코뚜레는 소가 사람이 부리는데로 할 수 있도록 길을 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집안에 복을 들여다 주는 복덩이 역할도 했다. 소코뚜레를 방문앞에 걸어 놓으면 만사가 형통하고, 안방에 걸어 놓으면 자손이 번성 한다 했다. 이는 소가 열심히 일을 하면 집안에 재물이 쌓이게 마련이었다. 논밭도 사고, 소도 늘리고, 소 팔아 자식들 뒷바라지도 했다.
집에 걸어놓는 소코뚜레는 향나무로 만들었다. 향나무는 제사향으로 쓰는 것이기에 잡귀(雜鬼)를 물리쳐주고 집안에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집안에 향나무 향기가 피어오르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부천은 마을이 주로 산등성이에 걸쳐 형성되었다. 한강으로부터 들어오는 물줄기가 차단되기 전에는 온갖 수해로부터 마을 집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원종동의 멧마루, 고강동의 고리울, 강상골, 원미동의 조마루, 여월동의 여월마을, 역곡동의 역골, 벌응절리, 범박동의 범박마을, 괴안동의 고얀, 소사동의 웃소새, 아랫소새, 심곡동의 깊은구지, 송내동의 솔안말 등에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하지만 부평수리조합이 생기고 동부간선수로의 한강 물줄기가 대장, 오정, 시우물, 약대, 장말, 넘말, 사래이, 구지말 등을 거치면서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부천평야에 새로운 농토가 많이 만들어져 사람들의 일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부천에서도 이곳으로 이사를 많이 했다.
부천에선 이사 할 때마다 소코뚜레 걸기 행사는 빼놓지 않고 진행했다. 이사간 집에 귀신이 들지 말라고 해서 걸어두는 것이 소코뚜레였다. 방문앞 문틀 위에 거는 엄나무 걸기하고 비슷했다. 이사를 가는 해의 길흉에 적용되는 삼살방, 대장군을 피하기 위해서도 걸었다. 삼살방, 대장군이 소머리를 싫어해서 소머리 대신 소코뚜레를 걸어두는 것이었다. 이사를 할 때 삼살방이나 대장군이 있는 방향으로 가면 죽지 않으면 병신이 된다하여 이를 피하였다. 자식들이 이사를 갈 때도 필히 소코뚜레를 걸어주었다. 언제 이사갈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항상 향나무 소코뚜레를 만들어 놓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