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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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집필자 | 한도훈 |
[정의]
부천시 전역에서 행해졌던 음력 12월 30일 설날 전날에 행해진 민속 풍습.
[개설]
섣달 그믐에서 ‘섣’은 ‘설’을 가리킨다. 그믐은 ‘그믈다’에서 나온 말로 ‘저물다’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섣달 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인 12월 30일로 마지막 날을 가리킨다.
그믐달은 새로 생겨나는 초승달의 반대로써 ‘가장 작아진 달’을 말한다. 그믐달은 아예 한밤중마저도 넘긴 새벽녘이 되서야 나온다. 새벽녘에 잠깐 보였다가 새벽 여명이 밝아오면 어느 순간 하늘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음력 29일부터는 아예 새벽녘에도 달이 보이지 않다. 달은 없고 온통 어둠뿐인 그믐만이 있다. 음력 30일까지 이어진다. 음력 1일이 돌아오면 새로운 달인 신월이 된다. 신월의 첫날은 삭(朔)이라고 한다. 삭망(朔望)이라고 해서 초하루날과 보름날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12월 30일의 그믐’을 섣달 그믐이라고 하여 설날을 맞이하기 위한 세시풍속이 있었다.
섣달 그믐의 다른 말로는 제일(除日), 제야(除夜), 제석(除夕), 연종(年終), 연모(年暮), 연말(年末), 세흘(歲訖), 세제(歲除), 세진(歲盡), 세종(歲終), 세제(歲除), 세밑(歲-), 세모(歲暮), 세말(歲末), 세경(歲竟), 눈썹세는날, 궁랍(窮臘) 등이 있다.
[생활민속적 관련 상황]
부천에서 섣달 그믐은 설날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설날에 입을 설빔을 준비하느라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가 정겨웠다. 설날에 지낼 차례상을 준비했다. 떡국, 만둣국 같은 음식도 장만해야 했다. 섣달 그믐에는 부엌에서 쓰는 부지깽이도 꿈틀거릴 정도로 몹시 바쁜 날이기도 하였다.
부천에서도 사당이 있는 집에서는 집안 친척들이 전부 모여 조상님들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집안 어르신들에게도 절을 올렸다. 이를 ‘묵은세배’라고 했다. 그리고 낮에 남자 어른들은 조상 묘소를 찾아 세배를 하였다. 이를 작은 설이라는 뜻의 ‘까치설’이라고 했다.
이렇게 자정이 넘으면 몸이 고되기가 천근만근인데 섣달 그믐에는 잠을 자지 말아야하는 풍습이 있었다. 섣달 그름을 한자로 제야(除夜)라고 해서 한해 동안에 있었던 모든 거래나 빚들을 청산하는 날이기도 했다.
부천의 마을에서도 다른 고장과 마찬가지로 섣달 그믐에는 잠을 자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집안 곳곳을 등불로 환하게 밝히고 잠을 자지 않았다. 마을 집집마다 다락이며 마루, 방, 부엌에 모두 등불을 켜놓았다. 부뚜막 솥 위에 불을 밝히는 것은 조왕신을 위한 것이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등잔불을 썼는데 흰 사기접시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켜놓았다. 집안 곳곳에 불을 켜놓으니 마치 대낮 같이 밝았다. 마을 집집마다 켜놓으니 마을 전체가 환하게 밝았다. 이렇게 밤새 불을 켜두는 것은 불빛에 광명이 비쳐서 집안에 복이 들어오고, 어둠을 통해 들어오려는 잡귀(雜鬼)를 쫓아 버린 뒤 새기운으로 설날을 맞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새벽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는데 이를 ‘수세’라 했다.
성냥이 생산된 시절에는 잠을 피하기 위해 성냥을 눈에다 지지대처럼 괴어놓고 참아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꾸벅 졸다가 잠에 떨어지면 잠을 자지 않고 있던 사람이 지체없이 밀가루를 참기름에 개어 눈썹에 발랐다. 아침에 깨어나면 눈썹이 하얗게 변해서 ‘눈썹이 하얗게 세었다’다고 놀려댔다. 눈썹이 센 것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설날이 오기 전에 죽어 버렸기에 새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풍습이었다. 그러기에 살아 있는 채로 새로운 설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잠을 자지 말아야 했다.
[현황]
현대에는 부천에서도 서울 종로의 종각에서 치는 제야의 종소리를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듣고 한다. 젊은이들은 길거리를 쏘다니며 청춘을 만끽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