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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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潝 |
영어음역 | Jo Heup |
이칭/별칭 | 흡여,경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중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흡여(潝如), 시호는 경목(景穆). 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조수익(趙守翼)이다.
[활동사항]
조흡(趙潝)은 광해군 말에 음서(蔭敍)로 승문원 정자에 임명되었다. 1623년 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군병을 모아 인조반정에서 공을 세웠다. 인조의 즉위를 경축하기 위해 실시된 등극경시 진사과와 생원과에 동시에 급제하였고, 반정의 공으로 정사공신 3등에 녹훈되어 종부시 주부가 되었다. 이후 장례원 사평·양구현감·형조좌랑·청안현감·창평현령·부평도호부사·상의원정을 역임하였다. 1640년 3월 부평부사로 부임하였다가 1642년 6월에 병으로 사임하였다.
1644년 공조참의를 거쳐 1646년에는 풍안군(豊安君)에 봉해지면서 광주부윤으로 부임하였다. 광주부윤으로 재직 중 술을 폭음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이시방(李時昉)의 탄핵으로 파직되었고, 1651년(효종 2)에도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으나 파직되는 등 정치적 굴곡을 겪었다. 이후 복직되어 벼슬이 공조참판에 이르렀고, 1661년(현종 2)에 별세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풍안군일기(豊安君日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