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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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秉老 |
영어음역 | Jo Byeongro |
이칭/별칭 | 유원(孺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추교찬 |
[정의]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원(孺元). 아버지는 임피현령을 지낸 조이순(趙頤淳)이다.
[활동사항]
1846년(헌종 12) 진사시에 급제하여 1849년 동몽교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이후 장수현감, 광주판관, 밀양부사, 홍주목사, 영유현령을 거쳐 1866년 8월 부평부사로 부임하였다. 1866년 8월 13일 프랑스 전함 3척이 부평도호부[현 인천광역시와 부천시]의 영해인 물치도 앞바다에 정박하자 조병로는 프랑스 함대의 기함 ‘프리모게’를 찾아가 영해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였지만 소득이 없었다.
이후 충주목사, 상주목사, 청주목사, 나주목사를 거쳐 1879년 승정원 승지, 1881년 봉산군수, 1886년 호조참판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886년(고종 23) 암행어사로 영남지방을 순행하던 중 사망하였다. 매천 황현(黃玹)은 『매천야록(梅泉野錄)』「이근수(李根洙)의 처형」에서 “조병로의 성품은 잔혹하여 고종의 밀명을 받고 이근수 등을 체포, 상주의 감옥에다 수감하고 고문하였다…… 조병로는 진주에 있다가 하룻밤 사이에 폭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부암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