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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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漢珪墓 |
영어의미역 | Tomb of Yi Hangy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 5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견수찬 |
성격 |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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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729년 |
관련인물 | 이한규 |
소유지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 55 |
문화재 지정번호 | 부천시 향토유적 제4호 |
문화재 지정일 | 2004년 5월 27일 |
[정의]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관 이한규(李漢珪)의 묘.
[개설]
이한규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내숙(來叔)이다. 아버지는 전주이씨 화의군(和義君)의 5세손인 이상지이다. 세종의 9남인 화의군 이영(李瓔)을 중시조로 하는 화의군의 후손이 부천 지역에 정착한 것은 영조 때이다. 즉 화의군의 6세손인 이한규 묘가 경기도 양주에서 부천시 여월동으로 이장되면서부터이다.
이한규는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내외 관직을 거치고 아장(亞將) 및 정헌대부형조판서지중추부사겸오위도총관(正憲大夫刑曹判書知中樞府事兼五衛都摠管) 등을 지냈다.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재직 때에는 선덕을 기려 경상남도 진주 촉석루의 표정사 공원에 선덕비가 있다. 선덕비는 진주 논개사당 뒤편에 세워져 있다.
1728년(영조 4) 영남에 난적이 창궐했을 때 왕의 친위병을 이끌고 남하하여 난적의 무리 가운데로 들어가 평정하였으며, 이듬해 68살을 일기로 타계하여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양주에서 장사를 지냈다가 1743년(영조 19) 여름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위치]
여월동 은행나무를 지나 800m 정도 진입한 후 보이는 오른쪽 야산의 능선 자락에 위치한다.
[형태]
이한규 묘 앞에는 묘비, 상석, 혼유석, 장명등, 망주석 등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묘 주위를 두른 호석에는 12간지가 새겨져 있다.
[금석문]
비문은 1780년(정조 4)에 증손인 절충장군경상우도병마절도사(折衝將軍慶尙右道兵馬節度使) 이문덕(李文德)이 지었다.
[현황]
문화재로 지정된 탓에 묘역이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고 관리도 잘 되어 있지만, 문인석은 근래에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