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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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鈞 |
영어음역 | Hong G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강옥엽 |
[정의]
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아들은 홍녹주(洪祿遒)로 서북면 병마사를 역임하였다.
[활동사항]
1233년(고종 20) 서경(西京)에서 일어난 필현보(畢賢甫)·홍복원(洪福源)의 반란이 진압된 뒤 이듬해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서 서경을 안무(按撫)하였다.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거쳐 원종 대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으며, 두 차례에 걸쳐 서북면을 다스리면서 선정을 폈으므로 지역민에게 ‘아버지’라고 칭송을 받았다.
1243년(고종 30) 9월 당시 집권자였던 최우(崔瑀)가 대사성 송국첨(宋國瞻)과 간의(諫議) 홍균(洪鈞)을 보내어 고려의 옛 부천 지역인 안남(安南)의 지세를 살피게 하고, 수로를 파서 바다와 통하게 하려다가 여의치 않아 중지하였다. 당시의 계획 목적이 배수로를 내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배가 다닐 수 있도록 운하를 파려고 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이보다 앞서 고려 인종 때 태안반도 안흥 앞바다의 험한 뱃길을 피하기 위하여 운하를 파다가 중단한 사실이 있고, 조선 중종 때에도 김안로가 굴포천을 이용하여 운하를 파려다가 중단한 사례가 있어 조운(漕運)이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도록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