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102 |
---|---|
한자 | 崔濂 |
영어음역 | Choe Ryeom |
이칭/별칭 | 양정(良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강옥엽 |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충주(忠州). 아버지는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지낸 최원유(崔原儒)이며, 부인은 우왕의 장인인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림(李林)의 딸이다.
[활동사항]
최렴은 충혜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공민왕 때 염흥방의 노비와 최렴(崔濂)의 노비들이 옛 부천 지역인 부평부에 거주하였다. 최렴의 노비들은 주인의 농장을 경작·관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평부에서 향리를 보내 군사를 뽑자 노비들은 향리를 구타하여 생명을 위독하게 하였다. 그 후 지방관이 직접 4도도지휘사(四道都指揮使)가 발급한 징병영장을 가지고 현장에 나갔음에도 그마저 구타하여 조정에까지 보고가 되자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1389년(공양왕 1) 판밀직부사 재직 중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즉위하면서 장인 이림의 일당으로 몰려 원지로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난다. 1392년(태조 1) 조선이 개창되자 검교의정부우의정(檢校議政府右議政)에 제수되고, 곧 안변에 적거(謫居)하다가 죽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양정(良靖)이며, 중원(中原)[현 충청북도 충주]의 영모재(永慕齋)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