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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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Donggeurangjae|Donggeurangjae Pass |
이칭/별칭 | 은행나무산,은행현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병철 |
전구간 | 동그랑재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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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동그랑재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
성격 | 고개 |
[정의]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고개.
[명칭 유래]
장마 때만 되면 대장벌판이 물에 잠겨서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피난을 갔는데, 이때 피난 간 산만 동그랗게 남아 있어 ‘동그랑재’로 불렸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대장동에는 원래 반남박씨가 대종을 이루고 살았는데 대부분 이사를 가고 지금은 몇 집 남지 않았다. 『반남박씨 세양공파세보』[1960]에는 섬말, 즉 대장2리 뒷동산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재[銀杏峴], 은행나무산[銀杏山] 또는 섬말 뒤 은행나무고개[島村後銀杏峙]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대장동·원종동 마을지』[2017]에서는 은행재[섬말 동산]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동그랑재는 은행나무산이나 은행현 등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천시사』[2002]에는 섬말에 있는 산으로 동그랗게 생긴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자연환경]
장마 때만 되면 대장벌판이 물에 잠기고 사람들은 산꼭대기만 겨우 남은 산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대장벌판이 저습지인 까닭에 수해를 자주 입었는데 이로 인해 이 지역이 동그랑재로 알려지게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현황]
동그랑재에 육각정을 세워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하였으며, 그 뒤 대장복지회관이 건립되어 주민들의 여가 선용의 충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금은 대장동 신도시 개발이 확정되어 신도시로의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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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2 | 동그랑재 | <참고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문헌>네이버백과사전(http://100.naver.com)</문헌> <문헌>인천,부천역사(http://cafe.naver.com/bcmoonhwa.cafe)</문헌> |
2010.12.20 | 동그랑재 | 1)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대장동'>대장동</지명>에서 제일 높은 고개인 만큼 과거에는 바다 밀물이 들어올 때도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동그랑재'>동그랑재</지명>에 육각정을 세워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시'>부천시</지명>의 북서쪽 <지명 검색='0' 검색어=''>김포평야</지명>에 위치하며, 그 옆으로는 <지명 검색='1' 검색어='국도 39호선'>국도 39호선</지명>이 지나고 있다. 고개는 경사 지형이 보존되어 있어서, 스포츠 싱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근처에는 <인명 검색='0' 검색어=''>장수황</인명> 소방관 추모비도 있다. 주민의 혐오시설인 <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하수종말처리장</지명>을 <지명 검색='1' 검색어='북부 수자원 생태공원'>북부 수자원 생태공원</지명>(옛 <지명 검색='0' 검색어=''>굴포천하수종말처리장</지명>)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또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처리된 방류수를 재처리한 2급수 물을 <지명 검색='1' 검색어='시민의 강'>시민의 강</지명>으로 조성하여 자연환경 개선을 꾀하고 있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대장동'>대장동</지명>에서 제일 높은 고개인 만큼 과거에는 바다 밀물이 들어올 때도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동그랑재'>동그랑재</지명>에 육각정을 세워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다가 현재는 <지명 검색='0' 검색어=''>대장복지회관</지명>으로 옮겨갔다.</문단> <문단>조선시대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부평도호부'>부평도호부</지명>에서 한양으로 갈 때 한다리를 거쳐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동그랑재'>동그랑재</지명>를 거쳤다.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동그랑재'>동그랑재</지명>를 거치면 바로 <지명 검색='0' 검색어=''>대장 큰말</지명>로 이어지는 돌다리가 나오고 <지명 검색='0' 검색어=''>큰말</지명>로 갔다. 여기서부터 <지명 검색='1' 검색어='방오리보'>방오리보</지명> 둑길을 따라 <지명 검색='0' 검색어=''>오쇠리</지명>를 지나 <지명 검색='0' 검색어=''>양천철곶포</지명>로 갔다.</문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