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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490
한자 忠臣
영어의미역 A Loyal Subject|A Faithful Reainers|A Loyalist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부천시
집필자 방기철

[정의]

부천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나 왕을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

[개설]

부천시 고강동에 청동기시대 유적지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이미 부천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려시대까지 부천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기록은 미약하여 서술에 어려움이 있다. 반면 조선시대의 경우 수도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 낙향하거나, 부천에 묘를 쓴 이들 중 국가에 충성을 다한 인물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충신으로는 변방을 굳건히 지킨 변종인, 이괄의 난을 평정한 변삼근·한여직,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장세강·박기남 등이 있다. 또 일제강점기의 경우 부천 지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인물 중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이들 역시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독립운동가로는 남광원·좌등용·한항길·유일한 등이 있다.

[조선시대]

1. 변종인(卞宗仁)[1433~1500]: 본관은 밀양이고 자는 자원(子元)이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했고, 1473년(성종 4)에는 말갈족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조선 초기 무신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 1499년(연산군 5) 순변사(巡邊使)로 함경도에서 변방을 구축하다 풍질에 걸려 이듬해 사망했다. 변종인의 묘와 신도비는 부천시 고강동에 있다.

2. 변삼근(卞三近)[1579~1648]: 본관은 밀양이고 자는 성지(誠之), 호는 오정(梧亭)이다. 인조반정 당시 앞장서 왕의 안위를 살폈고,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 변삼근의 묘는 부천시 고강동에 있다.

3. 한여직(韓汝稷)[1575~1638]: 본관은 청주이고, 자는 중안(仲安), 호는 십주(十洲)이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도관찰사로서 난을 평정하고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자하였고, 1628년(인조 6)에는 유효립(柳孝立) 모반 사건을 다스려 이등공신이 되었다.

4. 장세강(張世綱)[1525~1592]: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기중(紀中)이다.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의 종사관으로 탄금대전투에 출전하였다가 달천에서 전사하였다. 장세강의 묘소는 부천시 작동에 있으며, 전쟁중 시신을 찾을 수 없어 의관만으로 장례를 치렀다.

5. 박기남(朴寄男)[1559~?]: 본관은 죽산이고 자는 자수(子秀)이다. 임진왜란을 맞아 경상도에서 왜적의 정세 탐문을 주로 맡았고, 왜적과의 접전에서 선봉에 나서 적의 수급을 베는 등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박기남의 묘는 부천시 범박동에 있다.

[일제강점기]

1. 남광원(南光元)[1865~1945]: 본관은 의령이며 자는 칠정(七政)으로, 지금의 부천시 원종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에 직면하여 일본군 2명을 살해했고, 국권을 잃은 후에는 군자금을 모금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4년 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좌등용(佐藤勇)[1925~?]: 본적은 부천군 소사면 심곡리 602번지이다. 1943년 일본의 마츠사카시[松阪市]에서 토목공으로 일하면서 조국위안회(祖國慰安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1944년 검거되었다.

3. 한항길(韓恒吉)[1897~1979]: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중 3·1운동에 참여했고, 기차 통학생들에 대한 선도 임무를 맡았다. 또 시흥역·안양역·군포역에서 만세운동을 독려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이로 인해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다. 출옥 후에는 교직 생활을 하였다. 1958년 지금의 부천대학교의 전신인 소사공업기술학교를 설립하였다. 1990년 3·1운동에 참여한 공훈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4. 유일한(柳一韓)[1895~1971]: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1909년 미국내 독립군 양성 기관인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4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선전하는 모임인 한인자유대회에 참여하여 기초작성위원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광복 후에는 유한양행과 유한중고등학교·유한대학교를 창설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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